지원근 (Wongeun Ji)
2018 Fulbright Graduate Student Program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Educational Psychology (PhD)
오랜 기간 공공 분야에서 근무하면서 경험을 쌓았지만 직면하는 문제들을 이론적 틀에 근거해서 체계적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점점 커졌습니다. 그리고 특수한 분야이다보니 이 분야에만 정통한 전문가를 찾기가 쉽지 않았고, 대상에 대한 여러 관점과 의견이 있음에도 이러한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무와 학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해보고 싶은 소원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학부 졸업을 앞두고 여러 선생님들께서 대학원 진학을 권하셨었는데, 집안 상황으로 인해 바로 취업을 해야 했던 아쉬움이 십여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던 것 또한 이러한 바람을 계속 커져가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가정을 꾸리고 특히 세 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던 상황에서 직장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렇다고 회사를 쉬고 공부할 형편도 되지 못했기에 대학원 진학은 이룰 수 없는 하나의 꿈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우연히 풀브라이트 장학금 신청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유학 준비를 열심히 했던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생각해서 해당이 없을 것으로 여겼었지만, 혹시 저에게도 기회가 주어질까 하는 아주 작은 기대를 갖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급하게 모든 서류를 준비해야 했던 터라 제출기간 마지막날 우체국 마감 직전에 간신히 신청서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지원자보다 준비 시점이 훨씬 늦은데다 어학 능력도 제 스스로 보기에 탁월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에 고대하던 인터뷰 통보를 받았음에도 기쁨보다는 더 큰 부담을 받았었습니다. 특히, 영어 면접은 처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등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이전에 입사를 준비했을 때도 면접에서 정형화된 문구들을 나열하기보다 진솔하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왜 공부를 하려는지, 그리고 왜 이 분야가 우리 현실에서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있는 그대로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면접에 임했습니다. 긴장과 부담 속에서 면접을 시작했지만, 여러 면접관께서 제가 공부하려는 분야가 국내 상황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공감해주셨고 따뜻한 말씀으로 격려를 해주셔서 오히려 큰 힘을 얻고 면접장을 나왔습니다.
그렇게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유학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학교 지원 및 결정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로는 4월 말이 되어서야 학교를 정할 수 있었습니다. 1월 초에 한 학교로부터 지원 서류를 검토한 결과 긍정적인 연락을 받았다는 소식을 장학관 선생님께로부터 듣고 해당 학교로 가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4월 중순까지 연락이 오지 않아서 다시 문의해보니 착오가 있어서 누락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제서야 제가 직접 지원했던 학교에 문의해서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무더웠던 2018년 여름, 출국 1주일 전에 간신히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고, 비행기에 갖고 갈 짐과 배로 보낼 짐들을 나누어서 챙기느라 출국 당일 새벽까지 말그대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현지에 도착해서도 제 공부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학교 입학과 적응까지 돌봐야 하다보니 첫 학기는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유로 아이들 학교로부터 하루 걸러 전화를 받기 일수였고, 각국에서 유능한 학생들이 모인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 또한 저를 크게 짓눌렀습니다. 6-7명의 학생이 수강하는 세미나 수업에서 3시간 동안 영어로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을 처음하다보니 두통이 심해져서 매일 진통제를 먹고 수업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지도교수님과 학교 선생님들의 격려와 지지 속에서 저와 아이들 모두 조금씩 적응해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위스콘신의 기나긴 겨울도 익숙하게 보낼 정도로 현지 생활에 완전히 녹아들었습니다. 중간에 맞닥뜨린 코로나로 인해 1년 여의 시간을 집에서 지내야 했지만, 한국에서는 좀처럼 가질 수 없던 가족과의 시간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누릴 수 있어서 오히려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한동안 잠잠하던 시기에도 비록 많은 곳을 여행하거나 다녀보지는 못했지만, 동네의 평화로운 호숫가를 가족들과 함께 거니는 것만으로도 저희에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매일마다 동네 아이들이 저희 집 문을 두드리며 아이들을 불러내고, 저희 아이들 또한 친구들과 어울려 너른 풀밭을 뛰어다니는 모습도 한국에서는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것이기에 정말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마음 따뜻한 이웃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것도 정말 행복한 추억이 되었는데, 4년여간 많은 이들을 보내기만 하다가 이제 저희가 돌아가야 할 때가 되니, 마음을 추스리기가 참 쉽지 않았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대학원 진학을 희망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학위과정을 통해 공부하는 것들을 국내 현장에 적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유학하면서 만났던 학생들 중에는 미국에 정착하기를 희망하는 이들도 여럿 있었지만, 제 경우에는 돌아와서 계속 이어가야 할 일이 있었기에 연구 주제와 동기 등 모든 것이 한국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이 점에서 풀브라이트 장학금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고, 제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주었습니다. 특히, 장학금을 받는 첫 2년 동안 근무 부담 없이 학위과정에만 전념할 수 있던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큰 혜택이었습니다. 적응하기 힘들었던 과정 초기에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이수 학점도 조교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이 들을 수 있어서 학위를 상대적으로 빨리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지원자 분들이 다양한 목적과 동기로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유학을 통한 배움과 연구에 대한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다면, 저처럼 준비 시점이 다소 늦더라도 풀브라이트의 문은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친 걱정과 부담보다는 기대와 열정을 품고 지원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