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신 (Seungshin Seo)
2023 Fulbright Humphrey Fellowship Program
Arizona State University, Walter Cronkite School of Journalism and Mass Communication

 

  1. 내 이름은 Mr. Sunshine(선샤인).

Hello, Sunshine!    Good morning, Sunshine! 

미국에 온 지 사흘 만에 얻은 저의 새 이름입니다. 아프리카 출신의 한 여성 팰로우가 제 이름 Seungshin(승신)을 발음하기 어렵다며 스펠링이 비슷한 Sunshine으로 부르겠다고 하면서 새 이름이 생겼습니다. 

햇빛 또는 햇살, 밝음을 상징하는 단어라 제가 흔쾌히 받아들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일주일 뒤부터 캔자스대학교 교수님과 동료들까지 대부분 저를 선샤인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선샤인’이라는 이름은 캔자스에 이어 저의 호스트 대학인 애리조나 주립대에서도 이어졌고, 제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마치 해피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1. 선샤인, 영어와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다

기자 생활 20여 년,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많은 대륙과 나라들을 누볐지만 항상 저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어라는 언어 장벽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여전히 좁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외국 취재를 다닐 때 현지 코디네이터나 여행사에 의존하지 않으면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능력의 한계, 저는 그 한계를 뛰어넘고 싶어 50살이 넘은 늦은 나이에 과감히 험프리 프로그램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2023-2024 험프리 펠로우는 90여 개 나라에서 100여 명이 선발됐습니다. 모두 자기 분야 최고 전문가들로 영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강했습니다. 일부 펠로우는 4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선발되었다고 하니 그 나라에서 험프리의 위상과 인기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영어 집중 교육이 이뤄진 캔자스대학에서 만난 20여 명의 펠로우는 저에게 국제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습니다. 두 달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며 수업과 과제, 운동, 끼니까지 함께 하면서 그들의 생각과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때론 국제 정세에 대해 토론을 벌였는데, 이럴 때면 거의 밤을 새우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저의 룸메이트는 요르단 출신의 판사와 아프리카 토고 출신의 경제 전문가였는데, 그들로부터 서구 열강의 시각이 아닌 현지인의 시각으로 중동과 아프리카에 대한 실상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두 달 과정의 영어 집중 교육이 끝나면 펠로우들은 미국 내 13개 대학으로 흩어집니다. 동부의 MIT부터 서부의 UC데이비스까지 모두 유명 대학들이며, 저는 저널리스트로 애리조나주립대로 왔고, 여기서 다시 10명의 펠로우를 만나 국제 사회에 대한 또 다른 시각과 인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파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말라위, 시에라리온, 페루, 쿠바, 조지아 등 물론 익숙한 국명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중·고교 때 사회과부도에서 보았거나 올림픽 개막식 때 아나운서 멘트로 들었을 이름의 나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과 함께한 열 달은 제가 국제 감각을 키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때때로 미 국무부와 IIE가 포럼이나 세미나를 열어 나머지 100여 명의 동료 펠로우를 만날 기회도 제공했는데, 저는 이때에도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적극적으로 그들과 소통하고 교류했습니다. 

단기간에 100여 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건 험프리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이며, 그 가운데에 내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1. 선샤인, 미국에서 프로그램을 만들다

험프리 프로그램의 목적은 리더십 개발과 국제이해 증진, 네트워킹 등 다양한데 그 가운데 또 하나가 전문성 향상입니다. 애리조나주립대 월터 크롱카이트 저널리즘 스쿨은 이를 달성하는 데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저널리즘 스쿨은 펠로우에게 매 학기 필수 과목인 험프리 세미나 외에 다른 한 과목을 반드시 수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을학기에 ‘다큐멘터리 제작’ 과목을 수강했습니다. 제 연구 주제인 ‘기후변화와 언론의 대응 방안’과 관련해 미국 현지 정보를 섭렵하고 전문가들 인터뷰도 받아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이미 한국에서 50분짜리 방송용 다큐멘터리를 5편가량 제작한 터라 큰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수강과 다큐멘터리 제작에 들어가니 난관의 연속이었습니다. 전문가 섭외는 물론 촬영 장소 확보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습니다. 학부생 1명과 석사 과정 학생 1명, 이렇게 3명이 팀을 이뤄 제작에 나섰는데, 서로 간에 일정조차 맞추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어려운 여건 속에서 휴일까지 반납해가며 8분 안팎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바로 기후변화로 죽어가는 애리조나 선인장을 모델로 한 ‘Sweltering Saguaro’입니다. 학교 캠퍼스에서 두 차례 상영회를 열어 큰 호평을 받았고, 각종 페스티벌과 경진대회에도 출품되어 본선 진출작과 지역 우승작 등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맛보았습니다. 

험프리 펠로우는 PA(Professional Affiliation)라고 해서 실제 자신이 선택한 기관에서 한 달여 직접 구성원으로 일을 하고 결과물도 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전문성 향상이 주목적입니다. 저는 미국 공영방송 PBS의 애리조나 지국 ‘애리조나 PBS’에서 일을 했습니다. ‘HORIZON’이라는 토론과 대담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팀이었는데, 이번에도 제 특이한 이름 덕분에 구성원들과 금세 친해질 수 있었고, 프로듀서 역할도 충실히 해낼 수 있었습니다. 

F. 케네디 대통령의 조카이자 보스턴 지역 하원의원을 지낸 패트릭 케네디를 만난 것도 이 팀에서였고, 피닉스 지역 하원의원 선거를 앞두고 열린 토론회에서 유력 후보들을 직접 만나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팀 덕분이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와 히스패닉 등 소수 그룹 이민자들이 언어 등 여러 장벽 때문에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해 ‘Misinformation’과 ‘Disinformation’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이를 ‘HORIZON’ 방송에서 기획과 연출을 했는데 많은 분들로부터 미국 대선을 앞두고 시의적절한 아이템이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1. 정들었던 이름 ‘선샤인’과 이별을 고하며

맨 처음 험프리 프로그램에 도전할 때, 누군가는 제게 말했습니다. “쉰이 넘으면 인생을 즐길 나이인데, 왜 굳이 고생을 사서 하느냐”라고. 아마도 돋보기에 두꺼운 토플 책을 펴고 영어 공부에 매진하는 제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기 때문일 겁니다. 저 역시 그때는 공부가 쉽지 않아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저널리즘의 본고장에서 직접 저널리즘을 공부해보겠다는 열망과 기자 생활 중 느꼈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저를 계속 채찍질했습니다. 또한 사춘기에 접어든 세 자녀에게 더 크고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부모로서의 욕심도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연수 기간 10번에 가까운 영어 프레젠테이션과 발표는 매우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의 능력을 한 단계 향상시키는 지렛대가 된 게 분명합니다. 

영어 공부를 할 때, 저는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를 거의 외우다시피 듣고 음미했습니다. 영어 표현도 훌륭했지만, 그 내용이 저에게 용기를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은 여전히 저에게 큰 동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끊임없이 배움과 도전을 이어가라는 메시지로 다가왔고, 앞으로도 제 삶의 지침이 될 것입니다.선샤인이라는 이름과는 이제 이별할 때가 됐지만 아마도 햇살과 햇볕이 있는 한 험프리 1년 간의 추억은 영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