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지 (Seolji Han)
2015 Fulbright Graduate Student Program
Brandeis University, English (PhD)
순수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외부 장학금이란 꿈과도 같은 말이었습니다. 유학 준비생들을 대상으로 한 장학 제도들이 대체로 이공계 학생을 선호한다는 씁쓸한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풀브라이트 장학 제도는 달랐습니다. 국제적인 ‘문화’ 교류를 기조로 운영되는 풀브라이트 재단은, 학문의 다양성이 결국 세계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경제적 이해 관계에만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학문이 가야 할 길이 어떤 방향인지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선구적으로 개척하는 재단으로서 풀브라이트는 제가 그리는 학문 공동체의 비전을 제공해 주는 단체였습니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서 보냈던 지난 수년여의 박사 과정 동안 저는 풀브라이트라는 이름이 매개해 준 학문적 인연을 맺을 수 있었으며,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세계 어디에선가 또 같은 이름 아래 학문적, 그리고 문화적 교류를 나누고 있을 수많은 ‘풀브라이터’들을 생각하며 우리가 나아가는 거대한 학문 공동체를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풀브라이트 장학금 수혜자 선발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그 과정이 요구하는 학문적 깊이였습니다.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 그리고 관련 분야 교수님들과 진행되는 30분 간의 심층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는 제 학문적 관심사가 무엇인지, 유학을 가려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당시 면접관 교수님들께서 던지셨던 날카롭고 흥미로운 질문은 박사과정을 마친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마도 저의 박사 과정의 시작은 미국에 입국한 후 맞이한 첫 학기가 아니라, 풀브라이트 서류와 면접을 준비하던 그 시점으로 소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풀브라이트 선발 과정에서 요구된 학문의 깊이와 명료함은 이후 제가 실제로 유학 준비를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장학생으로 선발된 후, 동기들과 여러 차례 만나서 유학 준비를 도왔던 것도 정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다양한 전공을 공부하는, 뛰어난 동기들과 대화하고 자기 소개서와 학업계획서를 서로 읽어주는 과정에서 많은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리엔테이션 이후 단체 메신저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또 정기적으로 만나 유학 준비 과정을 공유하면서, 외롭고 막막할 수 있는 유학 지원을 비교적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어드미션 이후에도 출국 준비와 비자 발급 및 각종 서류를 확보하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동기들과 좋은 인연을 쌓아갈 수 있었습니다. 비록 대학원 과정 시작과 함께 미국 각지로 흩어졌지만, 풀브라이트 동기들은 외롭고 막막한 타지 대학원 생활에 있어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입국과 동시에 이루어졌던 풀브라이트 게이트웨이 프로그램은 아주 유익했습니다. 게이트웨이 프로그램에서는 미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의지를 다잡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지도교수와의 관계를 ‘주도적’(proactive)으로 이끌어 가라는 조언은 매우 유용했습니다. 또, 각자의 공부가 어떤 식으로 문화 교류에 이바지할 수 있으며, 그런 면에서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해 보는 시간도 다시없을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전공을 공부하는 풀브라이트 동료들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생각을 접하며, 저 또한 학문의 공동체적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서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풀브라이트라는 이름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했으며, 그러므로 풀브라이트 장학생이라는 사실은 저에게 큰 자부심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지역의 다른 풀브라이트 장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게이트웨이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많은 동료 풀브라이트 장학생들과 보스턴에서 계속 함께 수학할 수 있었던 점은 행운이었습니다. 게다가 기존에 계시던 풀브라이트 선배들, 그리고 이후에 진학한 후배들까지 만나게 되면서, 외로운 유학 생활에 큰 힘이 되어 주었을 뿐 아니라 문화 교류 또한 활발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인도, 멕시코, 프랑스, 대만 등 다양한 국가에서 유학 나온 동료 풀브라이트 학생들은 타지에서 수학하는 것의 특수한 감각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되어 주었습니다.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정말 뛰어난 친구들이었어서, 유학 기간 중에 때때로 찾아드는 힘들고 약한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유학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저는 풀브라이트 장학금 지원을 적극 추천하곤 합니다. 무엇보다, 유학 지원 준비를 일찍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점, 장학생으로 선발된 후 함께 선발된 장학생들과 좋은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출국 후 게이트웨이 프로그램 등을 통해 각국의 풀브라이트 장학생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여타 장학 재단이 가져다줄 수 없는, 풀브라이트만의 고유한 장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에서 풀브라이트라는 이름이 갖는 강력한 힘은, 유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어드미션을 받는 데 있어 큰 무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어드미션 이후 유학 과정을 수행하는 중에도 풀브라이트 장학생이라는 자부심은 힘든 시기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서 제가 얻게 된 소중한 인연들에 감사합니다. 풀브라이트가 아니었더라면 이처럼 다양한 전공을 공부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페이스북 등을 통해 간간히 소식을 접하고 전하면서 그 소중한 인연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제 교류에 이바지한다는 면에서 풀브라이트는 여타 장학 제도와 구분되는, 명확한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국제적 기구이자 장학 재단으로서의 풀브라이트는, 학문의 의미란 결국 소통에 있으며, 소통이란 결국 다양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이러한 풀브라이트의 문화 교류 사업에 앞으로 동참하게 될 후배들에게 격려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나갈 새로운 인연들을 통해, 학문의 장이 계속해서 풍요롭고 다채로워질 수 있기를 기원하며, 또 그렇게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