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혜 (Jihea, Yang)
2022 Fulbright Humphrey Fellowship Program
Arizona State University, Walter Cronkite School of Journalism and Mass Communication 

 

Part 1. Kansas

2022년 6월1일부터 약 두 달간 주립 캔자스대학교(University of Kansas)에서 진행한 프리 프로그램(Pre-Program)에 참여하였습니다. 8월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험프리 펠로우십을 앞두고 영어 실력 증진과 미국의 문화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늘려가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입니다.

8주 동안 진행된 프로그램 기간 동안 펠로우들은 두 팀(레드/블루)로 나뉘어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는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세 과목(한 강의당 90분)을 듣는 빡빡한 일정이었습니다. 캔자스대학교 캠퍼스 부지가 매우 넓어서 매일 등산하는 기분으로 기숙사와 강의실을 오갔던 기억이 납니다.

캔자스대학교가 매우 체계적으로 프리 프로그램을 설계해 준 덕분에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가 무척 쉬웠습니다. 학교는 은행 계좌 개설 같은 필수 사항들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캔자스시티 시내 관광, 캔자스 대평원 하이킹, 호숫가 바비큐 파티, 가정집 저녁 식사 초대 등 다양한 외부 활동도 제공해 주었습니다. 펠로우들이 기숙사에서 다 같이 모여 산 까닭에 빠르게 친해졌고 매일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 끈끈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험프리 펠로우십 기간이 모두 끝나고 과거를 회상해볼 때 캔자스 대학교에서 보낸 시절이 유독 생생하게 떠오를 만큼 소중한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미국에 와서 처음 경험한 순간들이 유독 많았던 시절이어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캔자스대의 저널리즘 스쿨인 윌리엄 앨런 화이트 스쿨(William Allen White School of Journalism and Mass Communications)에는 최신식 방송 장비와 프롬프터, 팟캐스트 녹음실 등이 갖춰져 다양한 방송 제작 체험을 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습니다. 본인은 다른 펠로우들과 ‘안식년’을 주제로 30분 분량의 방송을 제작했는데 함께 대본을 쓰고, 카메라 각도를 논의하고, 편집을 구상하던 작업 전체가 흥미로웠습니다.

캔자스대에서 8주 간의 프리 프로그램을 끝내고 나면 10분 분량의 개인 발표를 해야 합니다. 이 발표는 앞으로 각자의 호스트 캠퍼스에서 어떠한 연구 주제로 공부할 것인지에 대해 사전 브리핑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조선일보에서 여기자로 근무하며 느꼈던 한계들과 의문점 등을 바탕으로 <여성 기자들은 어떻게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How Women Journalists Can Overcome Barriers?> 를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캔자스대 수업 시간 때 살펴본 논문들과 참고 서적 등을 바탕으로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Part 2. Arizona

프리 프로그램을 끝낸 후 2022년 8월 1일에 애리조나주 피닉스로 향했습니다. 본 연수 프로그램인 험프리 펠로우십이 애리조나주립대(ASU) 월터크롱카이트 저널리즘 스쿨(Walter Cronkite School of Journalism and Mass Communication at Arizona State University)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ASU의 월터크롱카이트 저널리즘 스쿨은 최근 미국 전역을 통틀어 경쟁력 있는 저널리즘 스쿨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장학금을 비롯해 방송 시설과 인턴십 등 각종 투자를 아끼지 않는 까닭에 미주리주·플로리다주·몬태나주 등 다른 지역에서 이 대학으로 오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교수진 면면도 화려해 에미상을 수상한 PD 출신이나 미국 대학 풋볼리그 최초의 여성 이사 출신, 월스트리트저널 아시아 특파원 출신 등 다양한 실전 경험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미국의 언론계에는 시험 봐서 합격하면 끝인 공채 시스템이 없고, 인턴십으로 시작해 자신의 경력을 업그레이드해나가야 합니다. 따라서 가능한 많은 인턴십 기회를 잡고 실전 경험을 쌓고 싶은 언론인 지망생에게는 ASU 월터크롱카이트 저널리즘 스쿨이 더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합니다. 특히 스포츠 분야는 스포츠 저널리즘 학과가 학부내에 따로 있을 정도로 학교에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분야인데, 재학생들이 직접 만드는 ‘크롱카이트 스포츠’는 편집국의 규모가 국내 주요 언론사 스포츠부서의 3-4배가 될 정도입니다. 학생 기자부터 50명 넘게 있고, 각종 촬영장비와 편집기까지 웬만한 언론사와 비교해 전혀 밀리지 않는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 북미 4대 프로 스포츠(MLB, NFL, NBA, NHL) 구단들이 있고 피닉스 오픈 등 주요 골프 대회까지 열리는 곳이어서 스포츠 저널리즘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학교였습니다. 또한 ASU 월터 크롱카이트 저널리즘 스쿨 건물 안에는 미국 공영방송 PBS의 애리조나주 지국인 Arizona PBS도 있어서 재학생들이 실습 수업이나 인턴십을 쉽게 시도할 수 있습니다.

ASU의 험프리 펠로우십은 ‘험프리 세미나’로 불리는 학과 수업과 사회봉사·문화체험 등으로 구성된 비학과 수업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험프리 세미나(Humphrey Seminar)는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과목으로 매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3시간 가량 진행되었습니다. ASU 저널리즘 스쿨의 교수가 강의를 맡았으며 리더십 증진과 미디어 산업의 변화 이해, 다양한 사례 연구가 세미나를 구성하는 주요 키워드입니다. 이 세미나는 펠로우들의 토론과 발표가 골간을 이루며 수업 후에는 세미나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페이퍼를 제출합니다. 이 세미나에선 CNN, 애리조나 리퍼블릭 등 미국 주요 언론사의 현직 언론인들이 연사로 자주 초청돼 미국 미디어 업계의 실황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또한 선택 과목도 별도로 수강해야 합니다. 미디어 관련 수업만 듣도록 강제하지는 않기 때문의 본인의 경우 2022년 가을학기에는 <고대 이집트 예술사>를 듣고, 2023년 봄학기에는 <미디어 윤리>를 수강했습니다. 피닉스는 태양 볕이 작렬하는 사막 도시이기 때문에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는 이집트 예술에 절절히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미디어 윤리 수업에서는 9·11 테러 때 화염을 견디지 못하고 세계무역센터에서 투신하는 사람들을 언론이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장애인 관련 보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수강생들이 그룹을 나눠 토론하고 각자 에세이를 제출했습니다. 일반 학부생들과 같이 수업을 받으려고 애쓰다 보니 영어 듣기와 쓰기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험프리 펠로우십은 10여년 안팎의 경력을 보유한 Mid-Career Professionals을 대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단지 배우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전문 지식을 나누는 역할도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본인은 미국 국무부 산하 IIE가 주최·선발하는 Community College Residency Program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아 2023년 4월 펜실베이니아주 베들레헴에 있는 노샘프턴 커뮤니티칼리지에서 일주일간 <한국의 저널리즘>을 주제로 강의했습니다. 미국 대륙 밖으로 거의 나가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가수 BTS·블랙핑크 등 K-POP이 널리 알려져 있어 한국에 대해서 친숙함과 호기심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아서 강의를 진행하기가 수월했습니다. 또한 한국의 위상이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졌음을 실감했습니다.

2022-2023 험프리 펠로우는 12개국에서 온 13명으로 구성됐습니다. ASU는 펠로우들이 세미나와 수업 시간 이외에도 서로 적극적으로 어울리며 교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장려했습니다. 자선 푸드뱅크 봉사나 텃밭 가꾸기 체험 등을 함께 했고, 펠로우십의 진행 양상을 펠로우들이 직접 공식 인스타그램/트위터/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홍보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학기마다 한 차례씩 블로그도 기고하도록 해 험프리 펠로우십을 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점들을 다채롭게 공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매년 10월에는 글로벌 리더십 포럼(Global Leadership Forum)이 열립니다. 험프리 펠로우십을 주관하는 미국 국무부가 수도 워싱턴 DC에서 4박5일간 진행하는 데 인권과 언론자유, 기후변화, 공공의료 등 여러 주제를 놓고 연사 강의와 토론 등의 방식으로 포럼을 진행했습니다. 무엇보다도 2022-2023 기수에 해당하는 험프리 펠로우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기회여서 풍부한 네트워킹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들과 대화하고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글로벌 커뮤니티에 대한 시야가 한층 넓어졌습니다.

또한 험프리 펠로우십은 개인의 역량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적극 권장합니다. 이를 위해 펠로우십 장학금 중에는 발전 기금(Professional Development)으로 불리는 항목이 따로 있습니다. 각자의 전문 지식을 늘리기 위해 이와 관련한 학회나 세미나에 참여할 경우 쓸 수 있는 돈입니다. 항공료와 숙박비까지 정산이 가능해 애리조나주에 국한하지 않고 동부 지역까지 원하는 곳이든 어디든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본인은 2023년 3월 보스턴에서 열린 MIT Sloan Sports Analytics Conference에 다녀온 것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스포츠 분야에서 발전된 기술과 앞으로의 미래 전망을 두고 프로 스포츠 구단 관계자와 응용 수학자, 투자업계 관계자, 운동생리학자, 언론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오직 숫자로만 자료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2023년 4월에는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웨인 주립대에서 열린 IIE 주최 리더십 워크숍에 참여했습니다. 우선 디트로이트라는 도시가 범죄의 온상이 된 폐허의 도시일 것으로 막연히 생각했는데, 긍정적인 의미로 예상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어서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 워크숍에서는 어떻게 하면 팀원들의 의견을 망라해가면서 합리적인 의견을 도출할 수 있는 지와 리더의 유형에 따른 성격 별 특성, 소수자를 배려하는 리더십의 언어 등을 배웠는데 기존에 들어보지 못했던 내용이어서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험프리 펠로우십은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면 수료증을 제공합니다. 2023년 4월 27일 ASU 수료식이 열렸는데 수료증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앤서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친필 서명이 들어가있어서 보람과 기쁨이 배가 되었습니다.

 

Part 3. D-backs

험프리 펠로우십의 독특한 특징은 수료식이 끝나고 난 기간 동안 전문교류활동(Professional Affiliation·PA)을 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인턴십으로, 최소 6주를 이행해야 합니다. 그 동안 세미나와 다양한 사회 활동 등을 통해 보고 배웠던 미국의 문화와 의사소통 방식 등을 PA를 통해 응용하고 적용해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PA를 하고자 하는 기관에 일방적으로 연락을 넣고 인터뷰 등을 거쳐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PA 기회를 스스로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저는 미국의 업무 문화 그 자체를 보다 폭 넓게 경험해 보고싶은 생각에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애칭으로 D-backs)를 PA 희망 기관으로 생각했습니다. 피닉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이 야구단은 2000년대 초반 ‘BK’로 불리던 마무리 투수 김병현의 활약으로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구단입니다. 2001년 D-backs가 극적으로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때 김병현이 드라마틱한 공헌을 했기에 애리조나 사람들에게도 그의 이름은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있습니다. 이 점을 적극 활용하여 구단에 이메일을 보내 PA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고, 구단 부회장과의 면접 등을 통과하여 PA 기회를 얻었습니다. 저는 마케팅 팀에 배치돼 5월에 열리는 ‘아시안 헤리티지 나잇(Asian Heritage Night)’ 준비에 참여했는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팬들이 구장에 방문할 수 있도록 팀원들끼리 기획 회의를 하고 아이디어 용품을 마련하는 일 등 여러 의사결정 과정 자체에 참여할 수 있어서 생생한 비즈니스 영어와 미국의 기업 문화를 경험한 것이 큰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Part 4. Epilogue

험프리 펠로우십 기간 동안 저의 연수 주제는 <여성 기자들은 어떻게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How Women Journalists Can Overcome Barriers?> 였습니다. 제가 10년간 조선일보에서 일하면서 경험했던 한계와 의문을 풀고 싶은 것이 험프리 펠로우십에 참여할 기회를 원했던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이 문제에 관한 해법의 실마리를 얻게 된다면, 반드시 여성 후배들과 이 노하우를 공유하겠다고 다짐을 거듭했습니다.

닮고 싶은 여성 리더십 롤 모델을 최대한 많이 만나보는 것이 이 주제를 탐구하기 위한 최고의 해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 사회엔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다채로운 여성 리더들이 많아서 여성 리더십 문제를 파고들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특히 ASU 월터 크롱카이트 저널리즘 스쿨에는 미국 언론사 편집국에서 여성 리더들이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다룬 ‘There’s no crying in newsroom’이라는 책을 공동저자로 펴낸 Kristin Grady Gilger 교수와 Julia Wallace 교수가 재직하고 있어 이들로부터 다양한 경험담과 조언을 허심탄회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홍일점’ 여기자로 언론 경력을 시작해 주요 일간지 편집국장을 하고 기업 대표까지 맡다가 학교로 근무지를 옮긴 이들의 진취적인 활약이 뜨거운 영감을 선사했습니다.

험프리 펠로우십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훨씬 폭 넓어진 것을 실감합니다. 제가 보고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가급적 많은 후배들과 공유하도록 힘쓰겠습니다. 특별한 배움의 기회를 주신 한·미 양국 정부와 풀브라이트 재단에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