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택 (Hyuntaek Lee)
2021 Fulbright Humphrey Fellowship Program
Arizona State University, Walter Cronkite School of Journalism and Mass Communication
기자생활을 하면서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정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대개 선배들이 선정돼 다녀온다는 언론인 대상 언론재단의 연수를 떠올렸다. 어떤 선배들은 아이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고, 어떤 선배는 잘 쉬다 왔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풀브라이트의 중견 전문가 장학 프로그램인 험프리 펠로우십의 저널리스트 부문으로 다녀올 것이라는 생각은 그래서 더더욱 내 인생에 있어 의외였다.
험프리 프로그램은 2020년 여름 공고가 났다. 국제부에서 야근을 하던 중 우연찮게 기자협회보에 난 기사를 보고 풀브라이트 홈페이지를 접속했는데, 그날이 기관토플 접수 마지막날이었다. 일단 토플을 쳐 보고 결정하자는 생각으로 접수를 하고 서류를 준비했는데, 그 때부터 한 켠에 접어두었던 미국 유학에 대한 옛 꿈이 떠올랐다. 실력 부족으로 유학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가끔씩 그 때 유학을 갔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에 대해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험프리 프로그램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서류 제출도 너무 힘들었고, 풀브라이트의 평가 방식은 요구하는 것이 엄청 많았다. 짧은 기간 동안 내 14년 동안의 기자 생활을 돌이켜보고, 이를 영어로 브리핑하는 기분이었다. 개인적으로 기자지망생을 위한 참고서 5권을 공저했을 정도로 언론 관련 면접은 자신이 있었지만, 정작 풀브라이트 면접은 온몸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어려웠다. 그래도 면접 전 풀브라이트 선배들의 수기를 5번 읽으면서 나만의 학업 계획을 세워둔 것이 크게 도움이 됐다.
아무쪼록 열심히 준비한 과정과 운이 따라준 덕분에 험프리 저널리스트 장학 프로그램의 수혜자로 선정이 됐고, 2021년 6월 1일 캔자스대 2개월 어학과정을 시작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캔자스는 40대 전후한 중견 펠로우들에게 꿈의 무대였다. 규정상 가족을 동반하지 못해 2개월간은 가족의 희생이 필요하다. 나 역시 한국에서 아이와 둘이서 미국행을 준비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가족과 잠시 떨어져, 미국 대학과 미국 사회에 대해 솔직하게 또 차근차근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됐다. 글쓰기와 프레젠테이션, 자료 검색 및 수집 등 미국 대학에 적응할 수 있는 기초를 배우는 2개월 커리큘럼으로, 최종평가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펠로우십 본과정에 입교하지 못하고 귀국해야 한다. 하지만 캔자스대 교수진은 열성적으로 펠로우들을 지도해 주었고, 다들 어려움 없이 어학과정 수료증을 받았다. 캔자스의 교외 지역에 캠퍼스가 있어, 식사를 하러 기숙사에서 구내식당까지 다녀오면 왕복 1km를 걸어야 해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루는 밥 3번 먹고 수업 2개 건물 다녀오고, 저녁에 마트에 걸어갔다 왔더니 거의 7~8km를 걸은 적도 있었다.
나머지 10개월은 애리조나주립대 월터크롱카이트저널리즘매스커뮤니케이션스쿨에서 비학위 대학원생 신분으로 공부를 했다. ‘연구’가 아니고 ‘공부’라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 기자들이 많이 미국으로 가는 방문연구원 신분이 아니라 J-1 student, 진짜 학생이라는 이야기다. 한 학기에 한 과목은 필수고, 나머지 한 과목은 선택이다. 물론 첫 학기에는 대부분 두 과목을 듣는다. 매 학기에 한 과목씩 필수로 듣는 험프리 세미나는 험프리 펠로우들끼리 모여서 듣는 것이라 부담이 그래도 덜하다.
문제는 선택과목이었다. 나는 영어 공부도 하고 스쿨의 기초 과목을 여실히 느껴볼 생각에 글쓰기 관련 과목을 들었다. 젊은 대학생 입장에서는 6과목을 듣는 것도 아니고 2과목으로 무슨 엄살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나이 마흔에 스무살 어린 학생들과 듣는 선택과목은 정말 지옥 그 자체였다. “시간을 빼앗아 미안하지만, 못 알아들은 부분에 대해 너의 조언을 바란다”는 정직한 부탁으로 동료 수강생의 조언을 벗삼아 선택과목을 끝냈다. 크게 좋은 성적도 아니었지만(A-를 받았다), 이 수업을 온전히 수료한 것만으로도 나 자신의 의지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또한 프로그램 중 BBC 러시아 서비스 기자, 방글라데시 유명 가수 겸 현지 유력 영자지 기자, 국립 엘살바도르대 교수, 유럽안보기구(OSCE) 미디어리터러시 전문가 등 식견이 풍부한 동료 기자들과 매주 토론을 해야 하는 것은 축복이자 스트레스였다. 특히, 본인의 일천한 지식과 짧은 영어실력에 비해, 국제 세미나 한두 곳에서 패널 정도는 해봤던 경험이 있는지라 낮은 자세로 꾸준히 조언을 구하며 적응했던 기억이 난다. 펠로우십 과정 중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이에 대한 활발한 논의도 수업 중에 이뤄졌다.
험프리 프로그램은 또 교육과정 중 리더십에 방점을 찍는다. 이 때문에 험프리 세미나의 주된 방향은 뉴스룸에서의 리더십 함양이 주를 이룬다. 국내에서는 아직도 ‘국장이 지시하면 우리는 취재한다’는 식의 문화가 남아있는데, 미국식 뉴스룸 리더십 교육은 신선하면서도 다소 심적으로는 거리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또 본인의 멘토 교수는 미국 여성 뉴스룸 리더들의 리더십을 다룬 ‘There’s no crying in newsroom’이라는 책을 쓴 줄리아 월래스 교수님이었다. 일간지 두 곳에서 편집국장을 하고 통신기업 CEO까지 지낸 인물이지만, 정작 멘티인 본인과 만날 때는 백팩을 메고 오는 격의 없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대화 중에도 질문이 많이 날카로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한 평생 기자로 살아온 습관 때문 아닌가 싶다.
험프리 프로그램은 학생 신분으로 비학위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는 것이지만, 또 펠로우로서 민간 교류의 대표 역할도 해야 한다. 대표적인 행사가 매년 가을 워싱턴DC에서 진행하는 글로벌 리더십 포럼이다.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하고, 펠로우들이 지역별로 그룹 토의를 하고 우정을 쌓는 등 교류를 하는 행사다. 캔자스 어학과정을 수료한 35명의 펠로우에게는 기숙사 동료를 다시 만나는 재상봉의 의미도 있었다. 또한 험프리 프로그램은 전체 펠로우 중 10% 가량을 선발해 미 전역의 커뮤니티칼리지를 방문하고 교류활동을 하는 Community College Residency Program이란 것도 운영하는데, 운 좋게 선발돼 Pennsylvania주에 있는 Northampton Community College에 방문해 학생들에게 한국 언론에 대해 발표도 하고 현지 정치인과 언론인도 만나 교류했다. 당시 방문에서 지역 정치인인 Robert Freeman 주하원의원님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한없이 겸손하고 격의 없는 태도와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애쓰려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지역신문 Lehigh Valley Live를 만나 Nick Falson 편집국장을 만났는데, 그 역시 지역사회 토박이로서 평생을 지역 언론계와 독자에 헌신하려는 모습이 내게 귀감이 됐다.
또한 애리조나주립대의 배려로 뉴욕과 애리조나 남부 국경지대 등을 견학하면서, 주요 뉴스 이슈에 대해서 각국 기자들과 토론해 볼 기회도 있었다. 특히 애리조나 남부 국경경비대 팀장급 인사와 격의없는 토의를 한 것이 기억에 남는데, 민감한 이슈도 있고 해서 사전에 펠로우 전체와 오프더레코드를 약속한 것도 있어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이제 험프리 펠로우십은 끝났다. 한국으로 돌아온 내가 해야 할 일은 선정당시 약속했던 교육 후 포부를 하나씩 실천하는 일이 될 것이다. 국제뉴스 및 디지털뉴스 정책 관련 현업자로서 한국 언론계와 독자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고, 후학 양성에 힘을 보태고자 하는 계획이다. 수료식날 축사를 하러 애리조나까지 온 국무부 당국자에게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여기서 배운 것을 많이 써먹고 지식을 널리 공유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는데, 어째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