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형록 (Hyungrok Do)
2021 Fulbright Visiting Scholar Program
MIT

2003년으로 기억한다. TOEFL 시험을 위해 처음으로 풀브라이트 서울 오피스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긴장감, 분위기, 사람들의 표정은 지금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의 미국에 대한 첫 인상은 풀브라이트였다. 미국 유학을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풀브라이트는 최고의 지원을 제공했고, 비록 유학생 장학프로그램에 선발되지는 못했지만, 한미관계와 민간 교류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본 계기가 되었다. 이후 미국 서부에서 대학원과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중서부지역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이제는 미국의 문화와 역사를 어느 정도 잘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0여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모교로 돌아와 지내면서 미국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흘러간 기억으로 남았다. 최근 풀브라이트의 지원으로 미국에서 다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할 기회를 얻고 난 후에야 그동안 얼마나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무지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귀국 후 6년의 시간이 지나 미국에서의 연구년을 고민하게 되었을 때, 흥미롭게도 희미해져가는 미국에서의 기억들 보다 미국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었던 풀브라이트가 먼저 떠올랐다. 여권조차 만들어 본적이 없던 시절,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관문으로서 풀브라이트가 각인된 탓일까? 풀브라이트 방문교수 지원프로그램은 공학계열의 교수들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우연히 방문한 홈페이지에서 최근 이공계 교수 지원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쟁쟁한 지원자들을 만나 기대를 접고 연구년을 준비하던 중 선발 사실을 통보 받았다. COVID로 인해 연구년 계획 자체를 다시 고민하던 중이었고, 아마도 풀브라이트의 지원이 없었다면 한국에서 연구년을 보냈을 것이다. 다시는 없을 소중한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 풀브라이트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

프로그램의 시작이 순탄치는 않았다. 연구년 초청을 받은 MIT에서 COVID로 인해 캠퍼스의 개방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문 일정의 변경을 고민하던 중, J-VISA 발급 신청 기간을 불과 몇 주 남겨두고 캠퍼스의 완전 개방이 결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의 백신 접종 지연과 항공편 축소 운항, 미국 입국 절차 변경 등 여러 우여곡절 끝에, 비로소 8월 25일 보스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보스턴 지역의 캠브리지 시에 위치한 학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윈체스터 시에 정착하여 연구년 생활을 시작하였다.

지난 10개월 간 전기 추진 분야의 전문가인 항공과 Steven Barrett 교수의 초청으로 공동연구와 강의를 수행하였다. 고고도 비행체의 개념 설계를 위해 전기 추진, 로켓 추진, 극초음속 공기흡입 추진 등의 기술을 최적으로 조합할 수 있는 방법을 공동으로 연구하였다. 저고도에서 부터 고고도에 이르기까지 고효율 고속 비행이 가능한 비행체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적 난제들을 해결하여야 하며, 궤적 설계, 복합 추진기관 설계, 공력 설계 등의 분야에서 의견을 교환하고, 공동으로 비행체 개념 설계를 수행하였다. 화학 추진 및 에너지 변환 분야의 전문가인 기계공학과 Ahmed Ghoniem 교수와는 고고도 비행체의 지상시험 기술에 대해 공동으로 연구하였고, 향후의 공동 연구를 재정적으로 지원받기 위한 연구 제안서를 미국 공군연구소에 제출하였다. 미국 공군연구소와 MIT가 운영하는 Lincoln Laboratory의 연구원들과 만나 초고속 비행체 시험 및 연구에 대해 토론하고 향후의 협력방안에 대해 협의하기도 하였다. 또, 극초음속 비행체 표면에서 플라스마를 이용하여 유동을 제어하는 연구를 수행중인 Barrett 교수의 대학원생과 극초음속 공기흡입 추진 비행체를 연구하는 Wesley Harris 교수의 대학원생을 지도하고, Introduction to hypersonic vehicle design이라는 강좌(3-credit graduate level course)를 2022년 봄학기에 개설하여 강의하였다. Fulbright와 서울대학교의 규정에 따라 강의비 지원 없이 단축된 기간 동안 강의하였다. 방문 기간 내내 미국 공군연구소의 지원으로 진행 중인 레이저 계측 연구과제를 지속적으로 수행하였고, Princeton 대학에서 주관하는 웨비나 시리즈와 국제 레이저 점화 학회(Laser Ignition Conference)에서 초청 강연도 진행하였다.

출장 차 DC지역에 수 차례 방문한 일 외에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생활해 본 경험이 없었던 터라, 보스턴에서의 생활에 큰 기대가 있었다. The Spirit of America 라는 매사추세츠 주의 자부심은 보스턴 학살 사건, 보스턴 차 사건, 미국 독립전쟁과 벙커 힐 전투 등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이어져 왔을 것이다. 보스턴의 역사적 장소와 건물들을 볼 수 있는 Freedom Trail을 따라 걸으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보스턴과 미국의 역사에 대해 배웠다. 나 자신이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이렇게 무지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보스턴 지역 풀브라이트의 지원으로 방문했던 America’s Hometown, Plymouth 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에 앞서 미국 원주민인 American Indian 대표에게 주지사를 대신해 사과하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번 연구년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큰 선물이 되었다. 재직 중인 학교를 떠나 새로운 분위기에서 같은 분야의 학자들을 만나 활발히 교류할 수 있었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 미국의 교육시스템을 경험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아이들과 같이 우리나라를 소개하는 부스를 만들어 학교 친구들과 교직원, 학부모, 선생님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우리나라 전통 놀이기구를 만들어 미국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었던 일은 아이들과 나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끝으로, 연구년, 문화교류, 유학 등을 위해 미국 방문을 계획하는 모두에게 풀브라이트 장학 및 교수지원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싶다. 풀브라이트 장학 및 교수지원 프로그램은 체재비, 항공료, 가족수당, 귀국 수하물 등의 비용과 미국 국무부 초청 J 비자를 지원한다. 또한, 풀브라이트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지역 문화 이벤트들은 다른 지원 프로그램에는 없는 풀브라이트 동문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주요 지역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엄선된 이벤트들을 통해 미국을 느끼고, 동시에 세계 각국에서 온 풀브라이트 동문들과 만나 교류할 수 있었다. 풀브라이트 학자로서 미국 입국장과 방문하는 대학에서 받은 환대도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미국을 방문하는 모든 풀브라이트 동문들도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