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빈 (Youngbin Hyeon)
2014 Fulbright Graduate Student Program
University of Minnesota-Twin Cities, English (PhD)
그 흔한 어학연수 한번 다녀온 적이 없던 토종 한국인이었던 저에게, 미국유학 및 박사학위 취득은 항상 멀게 느껴지는 아득한 목표였습니다. 미디어를 통해서 접한 것 외에 미국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던 저는 도움의 손길이 간절했고, 바로 그래서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제가 지금껏 살면서 내린 결정 중에 최고의 결정이 되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풀브라이트와 함께했던 제 지난 7년의 여정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출국 전
많은 유학준비생들이 그러하듯, 저 또한 유학을 준비하던 중 많은 장학프로그램들을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풀브라이트는 다른 장학프로그램들에 비해 명확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재정적 지원이 탄탄합니다. 각 지원자의 학교가 위치한 지역의 물가, 생활비, 배우자의 동행여부를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산정되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은 초기 정착비용 그 이상을 보장해 주었고, 덕분에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에만도 바쁜 유학 1년차 박사생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최고의 장학프로그램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 정착 직후, 저는 풀브라이트를 통해 경제적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풀브라이트의 재정적 이점은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부장학금의 수여자가 된다는 것은 지원자의 역량에 대한 신뢰할만 한 증거가 될 뿐만 아니라, 학교측의 재정부담을 줄여주기에 지원자의 합격 가능성을 높여주는 현실적 이점이 있습니다. 또한 합격 후 2년간 장학금을 제공하는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의 특성 상, 많은 풀브라이터들은 초기 2년간 TA 업무를 받지 못하는 대신, 3년차부터 남들보다 더 오랜 기간동안 TAship을 보장받습니다. 이는 곧 많은 이들이 더 이상 TA position을 보장받지 못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박사과정의 후반부에, Fulbrighter는 이 유예되었던 TA position을 제공받음으로써 더 안정적으로 학위를 마무리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실제로 저는 총 7년간의 유학생활 중 초반 2년은 풀브라이트장학금으로, 그후 5년은 학교에 고용된 teaching assistant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논문의 마무리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박사과정의 후반에도, 저는 여전히 풀브라이트의 혜택을 받고 있었던 셈입니다.
둘째로, 풀브라이트는 문화적, 정서적, 학문적 교류를 통해 빠른 적응을 돕는 커뮤니티를 제공한다는, 여타 장학프로그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제가 출국을 앞두고 있던 2014년 봄에는 막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선배 풀브라이터들이 각자의 경험을 공유해주는 간담회가 있었고, 이를 통해 앞으로의 유학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풀브라이트 동기들과의 네트워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었습니다. 오리엔테이션에서부터 시작된 만남은 출국 전까지 지속되었고, 이들과는 출국 이후에도 항상 단체카톡방을 유지하며 서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현실적 문제에 대한 고민, 알짜배기 정보의 공유, 학문적 이슈에 대한 토론, 서로에 대한 정서적 지지. 풀브라이트 동기들이 없었다면 미국에서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고립감을 털어놓을 나만의 대나무숲이 없었을 것입니다. 유학기간동안 미국 전역에 흩어져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날이 길었지만, 이들의 정서적 지지는 박사과정 내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출국 후
한국을 떠난 후 풀브라이트의 힘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게이트웨이 오리엔테이션 (Gateway Orientation)에서였습니다. 본격적인 미국생활이 시작되기 전 미국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팁을 배우는 자리인데, 이렇게 전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한 곳에서 만난 것은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터키, 콜롬비아, 아프가니스탄, 프랑스, 독일, 예멘, 시에라리온, 일본, 아르헨티나 등등 세계 각국의 젊은 풀브라이터들이 모여 각자의 꿈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이때만큼 제 페이스북의 친구 리스트가 다양해진 적도 없었습니다. 당시 만난 콜롬비아의 한 친구는 저와 함께 미네소타대학으로 가서, 이후 종종 캠퍼스에서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로 발전했고, 앞으로도 오랜시간 친구로 남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박사과정을 시작한 후 첫 2년 동안, 저는 매 해 풀브라이트 담당자와 면담을 하며 미국에서의 삶과 학위 진행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면담내용은 지도교수님과도 공유되었는데, 이를 통해 저에 대한 지도교수님의 이해가 한층 더 깊어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교수님”과는 선뜻 공유하기 어려운 저만의 현실적, 문화적고민들은 풀브라이트담당자의 전언을 통해 지도교수님께 전달되었고,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교수님”은 “advisor”로, “지도학생”은 “advisee”로 서서히 제 머리속에서 변화해 갔습니다. 논문을 끝마칠 즈음, 제 지도교수님이 그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저의 멘토로 자리매김 하신데에는 풀브라이트 담당자의 역할이 컸습니다. 풀브라이트는 저와 제 교수님 사이에 문화적 매개자의 역할을 수행해 준 것입니다.
비록 3년차 이후로는 풀브라이트의 직접적인 장학금 지원을 받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풀브라이트의 후광은 저의 학위과정에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같은 과의 동료들과 교수님들은 제가 풀브라이터라는걸 아는 순간 감탄과 존중의 시선을 보냈고, 심지어 제가 가르쳤던 학부생들 중 몇명은 유학을 준비하며 제게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풀브라이트의 일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그들에게 단순한 해외 유학생 그 이상의 존재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존중에서 오는 자부심과 긍지는 외로운 유학생활을 버텨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박사과정 마지막 해에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이었다는 사실이 제가 과에서 제공하는 펠로우십의 대상자로 선정되는 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논문을 잘 마무리하고, 귀국 과정에도 항공권 및 이사비용, Covid test 비용등의 다양한 도움을 받으며 무탈하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7년간 꾸준히 받은 지원과 혜택에 다시금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게 있어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은 제 역량과 가능성을 보증해준 고마운 키다리아저씨였고,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재정적 뒷받침을 아끼지 않은 후원자였으며,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세계의 많은 인재들과 교류하도록 해 준 거대한 사다리였습니다. 앞으로도 풀브라이트라는 보호자 아래 많은 분들이 미국유학의 꿈을 이루시길 기원하며, 동문으로서 응원의 뜻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