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윤정 (Yoonjeong, Bae)
2024 Fulbright American Studies Program
Gangbit Middle School
어릴 적 외국에서 4년 동안 살면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처음에 낯선 나라로 갔을 때는 워낙 어려서 아무 생각 없이 갔지만 점차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그 어느 때보다 감성적인 시기라 그랬는지 점점 한국이,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무렵 해외에서 장기적으로 있을 계획을 뒤로 하고 학기를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 이후로부터 줄곧 잠시 여행을 다녀오는 일 제외하고는 한국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릴 적 나름 자부했던 영어 실력도 현저히 줄어들었고 교직 생활 8년차에 접어들며 번아웃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2023년 여름 방학이 끝날 무렵, 학기 시작을 앞두고 묵직한 돌 하나를 안고 하루를 시작하고 있던 어느 날, Fulbright 공문을 보게 되었다. 공문을 보자 마자 마치 이미 합격한 사람처럼 몇 초 안에 해외에 가는 내 자신을 떠올리며 설렘과 기대감으로 마음이 부풀었다. 대학교 시절 교환학생을 가고 싶었지만 교직 이수를 하여 들어야 되는 학점도 많았고 하루라도 빨리 임용고시를 준비하여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에 교환학생 가는 것을 포기했었다. 그 때 안 가 본 게 계속 후회로 남았던 찰나에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거 너무나도 감사했고 오랜만에 ‘학생’의 신분으로 배움으로써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얻게 될 거라는 생각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곧바로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에세이를 작성하는 데 단어 하나, 하나 고심해서 쓰고 읽고 수정하는 작업을 수없이 했다. 공문을 보자 마자 곧바로 썼지만 최종 제출일까지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그만큼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주변에서 갔다 온 지인도 없고 정보도 많이 없었지만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엄청난 동기 부여가 되었다. 준비해야 되는 서류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워낙 일찍부터 준비한 것도 있고 그 과정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제출을 완료하고나서 거의 매일같이 생각했던 것 같다. 꼭 합격해서 이런 소중한 기회를 누릴 수 있기를. 1차 발표가 나기까지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었지만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갔다. 그리고 1차 서류 발표 날 합격 이메일을 받고나서 마치 최종 합격된 것 마냥 너무나도 기뻤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최종까지 안 될 상황을 생각하여 꾹 참았다. 그리고 면접 당일, 주말이었지만 학기말 작업으로 출근하여 홀로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면접 시간이 오후 4시 30분이었고 학교에 이른 아침에 도착하였는데 면접 시간까지 얼마나 떨렸는지 그때의 긴장감과 열정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면접을 보고나서 최종 발표날까지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그때도 시간이 참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정된 발표 날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아 불합격한 건지 긴가민가하며 믿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계속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합격 통보를 받은 순간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기회가 주어짐에 너무나도 감사했고 정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프로그램에 참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2024년 1월 3일 출국 당일. 줌으로 만난 동기 선생님들을 만났다.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선생님들과 Fulbright 현수막을 들고 단체 사진을 찍는데 괜스레 자랑스러웠다. 마치 먼 과거에 신문물을 찾아 나서는 해외 사절단 같았다. 들뜬 마음을 안고 비행기를 올랐고 그렇게 한 달이라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Fulbright 장학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델라웨어에서의 모든 시간들을 돌이켜 봤을 때 나의 여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만 ‘도전’이었다. 소중한 기회를 후회없이 보내고 싶었기에 ‘comfort zone’을 벗어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도전했던 것 같다. 우선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다른 동기 선생님들의 적극적이고 친화적인 모습에 자극을 받아 사람들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의 감정도 일부러 더 많이 표현했던 것 같다. 수업 중 궁금한 게 있으면 서슴없이 질문하고 내 생각을 공유했다. 오랜만에 정말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호스트 가정에서도 방에 있지 않고 거의 항상 거실이나 주방에 내려와서 가족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시간을 보냈다. 너무나도 다행히 어린 아이들이 있는 집이어서 활기가 넘치는 가정이었고 인성과 인품이 훌륭한 아주머니, 아저씨여서 같이 지내며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나 역시도 가족의 일환이 되려고 ‘소극적’인 성격을 완전히 버리고 먼저 나서서 활동들을 제안했고 강의를 듣는 시간 외에는 최대한 호스트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저씨, 아주머니 친구분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 친구들하고도 ‘sleep over’를 하며 같이 놀아주고, 근교로 놀러가고, 같이 스케이트를 타고 테니스를 치고, 눈이 펑펑 오는 날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고 집 앞에 쌓인 눈을 같이 치우고, 한국 음식을 요리해드리고, 아침마다 가족 모두 함께 줌바 댄스를 하고, 동네 러닝 클럽을 가는 등 정말 많은 추억들을 만들었다. 미국에 있으면서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호스트 아주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ambitious’한 ‘제 2의 자아’로 살았던 것 같다. 어떤 배움이나 경험이 나에게 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먼저’ 내가 ‘배움’과 ‘경험’의 기회를 찾고 성장의 계기를 스스로 만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평소에 학교에서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와서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줄었는데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오고 ‘나’와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이고 ‘배움’의 또다른 방식인지를 배웠다.
삶의 전환점이 필요한 교사들에게 Fulbright의 American Studies Program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교직 생활에 지쳤던 나에게 과정 속 모든 만남과 배움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고 내 자신의 재발견이었다. 다시는 없을 시간이자 기회임을 알기에 스스로 규정 지어 왔던 삶의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는 시간들이었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용기’와 ‘열정’을 불어넣는 계기였다. 또다시 다양한 아이들을 마주하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바쁜 하루로 일상이 돌아오겠지만, 넓은 세상을 보았기에 더 넓은 마음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며 한층 더 성숙한 그리고 여유로워진 내 자신을 기대해본다.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의 즐거움, 인연과의 소중함, 수업에 대한 고찰, 새로운 도전들로 나의 미래가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삶이 밀도 있게 채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과 눈빛으로 희망을 전하고 있을 수많은 선생님들께 삶의 전환점이 될 이 기회를 널리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