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민 (Somin Chung)
2021 Fulbright Visiting Scholar Program
George Mason University
풀브라이트의 명성은 예전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풀브라이트 방문학자 프로그램으로 연구년을 다녀오신 동료 교수님들이 적극적으로 추천하셔서 풀브라이트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연구분야가 미국의 유언제도와 신탁 등 미국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연구년을 미국에서 보낼 계획이었기 때문에 더욱 제게 적합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지원하였던 2020년에는 코로나로 인하여 풀브라이트 수혜자 선발 일정이 지연되었습니다. 다행히 2021년 4월에 결과 발표가 나고 준비 기간을 거쳐 무사히 미국으로 연구년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방문학자 프로그램은 연구계획서가 선발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서 지원할 때 연구계획서에 정성을 쏟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미국 서부에 있는 대학교에서 석사과정과 첫 번째 연구년을 보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 연구년은 미국 동부에 있는 대학교로 가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또한 미국 연방대법원 등을 비롯한 정부기관도 방문하고자 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Washington D.C. 인근에 위치한 George Mason University에서 연구년을 보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George Mason University에는 한국학 센터도 있고, 센터장이신 노영찬 교수님(Young C. Ro)께서 방문학자들에게 많은 배려를 해 주셔서 연구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번 연구년 동안 코로나로 인하여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온 다른 나라의 학자들과 교류할 공식적인 기회가 거의 없었던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렇지만 저와 동일한 시기에 풀브라이트 방문학자 프로그램으로 George Mason University에 오신 이찬구 교수님, 한국학 센터에 오신 다른 방문학자분들과 교류하고 연구 주제에 대한 생각도 나누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연구년으로 미국에 있는 동안 제 전공분야인 법학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건이 기억에 남습니다. 미국 사법 역사상 최초로 흑인 여자 대법관이 임명되었습니다. Ketanji Brown Jackson 대법관의 상원 청문회 과정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대법관 후보자에게 낙태에 관하여 집요한 질문 공세를 펼치는 것을 보면서 이 문제가 미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청문회 과정에서 연방대법원의 구성에 다양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미국 사회의 부단한 노력을 엿볼 수 있었지만, 대법관 후보자에게 “아기들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가르치는 책에 동의하는가?” 또는 “본인의 종교적 신실함의 정도를 1에서 10까지의 숫자중 하나로 표현해 보라”는 다소 황당하고 공격적인 질문도 있어서 청문회의 본질을 떠난 선동적인 정치 공세가 얼마나 소모적이고 무의미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연방대법원은 1973년부터 49년간 유지되어 온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Roe v. Wade 판결을 폐기하였습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신체의 자유 및 자기결정권이 대립된 사안으로서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판결 내용 자체도 법리적으로 분석할 의미가 있지만 더 나아가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구성의 변화와 판례의 변경이라는 관점, 입법부의 역할과 사법부의 권한의 한계라는 관점에서도 비교법적으로 분석할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연구 이외에도 미국에서 여행도 다니고 주말에는 Washington D.C.의 미술관과 박물관 등을 방문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 필립스 컬렉션(Philips Collection), 허쉬혼 미술관(Hirshhorn Museum) 등을 방문하여 책에서 보던 유명한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Mark Rothko, Georgia O’Keeffe, George Bellows 등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미국의 자연, 도시 풍경, 인간의 감정에 관한 각 작가의 고유의 시선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Mark Rothko의 경우 작품 관람자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법학자로서 또 미국 유언법을 비교법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유언과 관련된 법적 분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Mark Rothko의 유언집행자들이 그의 작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Rothko의 상속인들을 속이고 판매 가격을 고의로 낮게 책정하는 등의 여러 가지 불법행위를 저질렀고 긴 법정 다툼 끝에 법원은 Rothko의 작품을 상속인들에게 돌려주라는 판결을 하게 됩니다. 상속인들은 그 후 Rothko의 작품을 국립미술관에 기증하였고 이를 계기로 국립미술관은 가장 많은 Rothko의 작품을 소장한 공공 미술관으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한편 미국에서 열린 2022년 반클라이번 콩클(Van Cliburn Competition)의 실황 중계를 보면서 한국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응원했던 것도 좋은 추억입니다. 미국 서부에서 첫 번째 연구년을 보낼 때 화창한 날씨와 야외 활동이 미국 생활의 활력소였다면 이번 미국 동부에서의 연구년은 Washington D.C.에서의 문화 생활이 큰 즐거움이자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은 풀브라이트 동문으로서 다른 학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생긴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전 세계에서 온 풀브라이트 장학생 모임이 미국 각 지역별로 열려서 많은 학자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었던 동안은 팬데믹 상황이라서 이러한 모임은 없었지만 아마도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각종 모임이 열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은 팬데믹 상황에서 미국에서의 연구 및 생활이 가능하도록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을 지원하면서 작성한 연구계획서는 미국에서의 연구를 미리 구체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에 지원할 때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이 많아서 주저되는 점이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 오히려 그 동안 했던 연구와 활동들을 중간 점검 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장학금과 각종 혜택들이 미국 생활에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다른 장학 프로그램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풀브라이트 동문으로서의 자부심도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지원하시고 좋은 결과를 얻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