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철 (Shi-Chul Lee)
2017 Fulbright Visiting Scholar Program
Yale University
귀한 기회를 얻어 2017부터 2018년까지 예일대에서 풀브라이트 방문 펠로우로 1년을 지냈습니다. 당시 인연을 맺었던 교수, 학생들과 가끔 연락을 합니다. 그때 알게 된 한국인 학생들이 지금 서울, 파리, 시애틀, 뉴욕 등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20년의 경우 코로나19 탓에 내내 안타까운 얘기만 나누었지요. 2월말 대구에서 확진자가 매일 수백 명씩 속출하던 공포의 시절, 힘들지만 희망을 갖자는 뜻으로 또한 밤낮으로 애쓰시던 의료진, 자원봉사자들, 공무원들에 대한 헌사로서 제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적이 있었습니다(Responding to Coronavirus, in the U.S. and Asia, NYT 2020. 2. 28). 그때 신문에 난 글을 제일 먼저 읽은 사람이 제가 아니라 예일대의 카렌 시토 교수였지요. 그렇게 격려와 성원을 나눈 이후, 이제는 미국 동부의 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자 걱정과 응원을 되돌려 주었습니다.
한미교육위원단이 이 땅에서 우수한 장학생 선발을 위해 애쓰시는 것처럼, 미국에서는 국무부 주관으로 풀브라이트 수혜자를 발표합니다. 대학들이 선발된 학생, 교수의 숫자를 가지고 자랑하지요. 예일대에서도 2019-20년 수혜자로 20명이 선정되었다고 널리 알렸는데, 미국 최고 수준은 아닙니다. 해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2019년에는 조지타운, 브라운, 프린스턴 대학이 각각 45, 38, 31명으로 최상위권이었습니다. 어쨌든 예일에서조차 풀브라이트의 명예와 권위가 인정받습니다.
예일 체류 중 느낀 것이 일종의 ‘풀브라이트 현상’입니다. 그냥 교환교수 또는 “Visiting Professor”로 소개하면 밋밋하던 사람들이 “풀브라이트 학자”(Fulbright Scholar) 소리에 반색하며 눈을 크게 뜨는 것부터 다릅니다. 특강 또는 정규 수업을 진행할 때도 첫 시간에 정식으로 풀브라이터임을 소개해 주는 모습에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영어야 예일 학생들보다 제가 훨씬 못하겠지만, 2018년 봄학기의 대학원 강의를 버텨낸 것이나 <예일대신문>에 기명컬럼을 기고까지 한 것도 풀브라이트 브랜드 덕분인 것으로 여깁니다. NYT 등의 부고기사를 보면 풀브라이트 학자 경력이 주요 사항으로 나오는 경우도 가끔 봅니다. 귀국 후에도 제가 학교 안팎에서 과분한 예우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뉴욕 광역권의 풀브라이트 환영 모임에 참석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컬럼비아 대학 중앙도서관의 로툰다 셋팅 자체가 특이했고, 풀브라이트 동문, 뉴욕주 관계자, One2World 스탭, 그리고 수십개국의 학자/학생들이 모인 자리였지요. 무엇보다도 풀브라이트 설루트(Fulbright Salute), 즉 다들 무대에 올라가 한꺼번에 인사하는 순서에서 뭔가 제대로 환영을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후 뉴욕권은 물론 보스턴, 샌디에이고, 텍사스, 몬태나 등에서 열렸던 각종 컨퍼런스, 강연, 세미나, 기타 모임에서 세계의 풀브라이터들을 만나게 된 것은 보배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미주, 아프리카, 유럽, 중국/일본 학자들, 특히 세 분의 한국 교수님들과도 감사한 사귐을 가졌습니다.
분파가 심한 미국 의회 내에서도 드물게 풀브라이트 예산에 대하여는 공감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지난 70년 이상 그럭저럭 유지되어 왔지만, 항상 안정적이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시절 상당한 예산삭감 위협이 더해졌다고 합니다. 각종 개발협력사업(ODA) 사업도 마찬가지인데, 과거 세계의 경찰/키다리 아저씨 노릇을 하던 미국이 아니지요.
한참 전 즉 코로나가 창궐하기 훨씬 전의 얘기지만, 워싱턴 DC에서 열렸던 풀브라이트 컨퍼런스를 잠시 떠올립니다. 국무부 담당과장 등이 자리한 간담회였는데, 청중 질문을 계속 요청하기에 제가 잠시 일어나서 한마디 했습니다. 미국 연방예산의 40% 가까이가 국방비인데 그 중의 극히 일부라도 더 떼어내서 풀브라이트 같은 국제적 평화/교육 교류에 사용하면 비싼 탱크/구축함을 만드는 것보다 미국과 세계의 안보에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었지요. 그 순간, 단상 위 책상에서 조는 듯이 가만히 있던 담당 과장이 마이크를 잡더니만 정반대 얘기를 했습니다. 가만히 두면 괜찮을지 모르는데, 안 그래도 여기저기서 숨은 예산을 찾아내려는 사람들이 풀브라이트 얘기를 들으면 “아, 그런 돈이 있었어? 그것도 깎아서 탱크를 더 만들자” 하는 식으로 될지도 모른다는 논리였지요.
당시 청중들로부터는 정말 좋은 질문/제안이었다고 응원 받았지만, 현실은 다른 모양입니다. 2016년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 그런 분위기가 노골화되어 국무부의 예산편성 단계에서 풀브라이트 등 학문/교육 지원 예산이 전년도 3천억 원에서 900억 원쯤으로 감축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당시 구글해 보니 탱크 1대 값이 약 8백만 달러였으니 미국의 국제교류 전체예산이 탱크 10대 값쯤으로 줄어든 셈이었지요.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한국 등 전통 우방은 물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경계선 국가들에서조차, 무기보다는 교육과 문화교류 등의 소프트 파워가 중장기로 커다란 힘을 발휘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은 본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포, 탱크 등 잉여 무기를 처분하여 평화와 국제교류 목적으로 전환시킨 획기적 프로그램입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더 넓은 세계와 더 높은 가치를 경험했습니다. 39명의 동문들이 국가원수를 지냈고 60명이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은 오히려 덜 중요할지 모릅니다. Bogaletch Gebre가 조국 에티오피아의 1백만 여성을 위한 건강센터를 설립했고, Muhammad Yunus는 그 유명한 서민대출 마이크로 금융을 방글라데시에서 시작함으로써 2006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이제 풀브라이트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후진국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 더 넓은 세계를 지향하는 쌍방 교육교류 프로그램으로 진화하였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정부 예산도 상당히 더하여 많은 미국인 교수/학생을 한국으로 초청하고 있지요. 2005년 태풍 카트리나 피해 때 풀브라이트 한국동문회가 십시일반으로 적지 않은 성금을 미국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풀브라이트 유학생 심사를 몇 번 들어갔습니다만, 이제 단순히 학교 성적만 좋은 지원자들이 아니라 언론, 의료, ODA, 정부 부문 등 다양한 경력자들을 봤습니다. 학계는 물론 그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와 미래를 내다보며 의미있게 기여하는 우리 동문들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Fulbright For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