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 (Kyuwon Lee)
2017 Fulbright Graduate Student Program
New York University, Media Studies (MA)
세계 각지에서 모인 인재들과 친구가 되다
3년 여에 걸친 제 풀브라이트 여정은 한여름 마이애미 해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풀브라이트 대학원 장학프로그램은 매년 여름 미국의 주요 도시들을 거점으로 ‘게이트웨이’라 불리는 오리엔테이션과 함께 시작합니다. 같은 해 미국 곳곳의 대학교에서 학위를 시작 할 풀브라이트 동기들과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기도 합니다.
총 4박 5일, 세계 각지에서 막 도착한 동기들과 저마다의 시차를 극복하기 위해 진한 블랙커피를 손에 쥐고 게이트웨이에 참여하고 있을 때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서 보내게 될 시간이 제 인생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지 미처 상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땐 그저 학교가 위치한 뉴욕에 가 거처는 제대로 구할 수 있을지, 개강 전까지 처리해야 할 각종 서류와 절차들은 제때 마무리해낼 수 있을지와 같이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에 신경이 더 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마이애미 해변의 오리엔테이션 기간동안 사귄 동기들은 풀브라이트 장학기간 도중은 물론이고, 프로그램 종료 이후에도 세계 각국, 각자의 분야에서 서로를 자극하고, 지원해주는 소중한 친구들로 남아있답니다.
이 같은 만남과 네트워킹의 기회는 풀브라이트 기간동안 계속해 주어집니다. 예를 들어 장학 2년차에 3박 4일에 걸쳐 참석했던 Enrichment Seminar는 대주제를 중심으로 한 컨퍼런스 형식으로 기획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학술발표 느낌보다는 토론과 견학, 봉사 등으로 일정이 채워져 있어 2년차 장학생들 간의 네트워킹 모임의 성격이 훨씬 강했습니다. 미국 각지에서 저마다의 1년을 보낸 풀브라이트 동기들과 교류할 수 있는 의미깊은 시간으로, 저 같은 경우 뉴욕에서 얼마 멀지 않은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Enrichment Seminar에 참석했는데 그밖에도 서너군데의 다른 도시에서 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2년차의 막바지 즈음엔 새로오는 장학생들의 오리엔테이션에 멘토로 참여해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게 돼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뉴욕에서 기차로 약 45분 정도 떨어진 뉴저지 몽클레어에서, 2년 전 이제 막 미국 땅에 발을 디뎠던 제 모습과 그때의 설렘을 떠올리며 갓 미국에 도착한 각국의 장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와 정보들을 성심성의껏 공유해주려 노력했습니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서의 자부심 – 학교와 직장에서
뉴욕대학교에서의 석사 첫 학기는 모험과 실험의 연속이었습니다. 학기가 막 시작한 9월 중순 에어비앤비를 전전하며 당장 지낼 곳을 구하는 과정부터, 주머니 사정에 알맞은 저렴한 식료품점, 논문 읽기 좋은 커피숍을 찾아내고 각종 수업 외 프로그램과 이벤트, 캠퍼스 내 시설들을 탐방하는 일들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설렘을 맘껏 누리지도 못할만큼의 학업량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제 전공과 미국 대학원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고려할 때 수업이 토론위주로 진행될 것이라는 걸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토론의 난이도와 주제에 따른 전개속도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제게는 꽤 벅차게 느껴질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매주 할당된 논문과 읽기자료들을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보다 두 세배 꼼꼼히 분석해 수업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제 삶의 중심을 강력하게 지탱해준 것이 바로 풀브라이트 장학생이라는 자부심, 그리고 풀브라이트를 통해 제공되는 무수히 많은 지원들이었습니다. 같은 전공과정의 동기들은 물론이고 교수님들께서도 우연히 제가 풀브라이트 장학생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 감탄과 존경의 반응을 내비쳤습니다. 물론 그런 감탄은 저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이 그간 쌓은 명성과 영예에 대한 것이라고 보는 게 적당할테지만, 제가 그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 스스로에게는 대단히 커다란 심리적 긍지로 작용했습니다. 또, One To World, IIE Cultural Desk 등에서 수시로 제공하는 각종 풀브라이트 동문 이벤트, 공연, 전시 관람 기회 등은 유학생, 그리고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서 제 삶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가령 One To World에서는 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때마다 현지에 있는 풀브라이트 동문 가족들과 장학생들 간의 저녁식사와 파티 등을 주선해주기도 하고, IIE에서는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행정지원에서 나아가 카네기홀, 링컨센터 등에서 열리는 각종 콘서트와 공연 티켓 등을 장학생들에게 수시로 제공해주었습니다. 이처럼 학업 이외에도 풀브라이트 프로그램 덕분에 배우고 누리게 된 사회적, 문화적 경험들은 제 삶에 소중한 활력이 되었습니다.
학교를 떠나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회사 내외에서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서 사람들에게 받는 인정은 늘 빛나는 꼬리표로서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저 같은 경우 석사과정 졸업과 동시에 운이 좋게도 같은 도시에 위치한 저널리즘 연구/교육단체에서 Post-Degree Academic Training을 통해 업무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덕분에 풀브라이터의 타이틀을 달고 약 1년 3개월에 걸쳐 분야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뉴욕 매디슨가에서 미디어, 뉴스에 관련한 첨단의 지식과 논의들을 생산해내는 데 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같은 회사 내에 근무하는 동료직원 두 명이 과거 각각 그리스, 인도를 방문했던 풀브라이트 동문이었던 사실 역시 풀브라이트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문화를 배우라“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 오기 전, 단장님께서 해주셨던 따뜻한 조언이 떠오릅니다. “미국, 특히 뉴욕에 가시거든, 아마 건물도 낡고, 지하철에서 악취도 나고, ‘뭐 이런 데서 내가 배울 것이 있겠나’ 싶은 생각도 드실 거다. 근데 그곳에 가 물질적인 것에서 배울 점을 찾지 마시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사고하는지, 어떻게 사회를 바라보고, 다른 이들을 대하는지를 잘 살펴보고 배워오시라.”
지난 3년을 되돌아보건대, 단장님께서 그때 해주신 말씀은 어쩌면 “그렇게 하라”는 조언보다는 아마 “그렇게 될거다”라는 예측에 가까웠던 걸로 느껴집니다. 풀브라이트 장학기간 동안 제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미국문화와 사회 곳곳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포용과 환대, 도전과 진취의 정신입니다. 버스터미널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던 제게 먼저 다가와 목적지까지 가는 티켓을 같이 끊어준 아주머니, 크리스마스 때마다 초대해 온갖 음식과 선물을 챙겨 보내주셨던 야스민 가족, 학교와 관한 무슨 문제가 있을 때마다 모든 융통성과 방법을 동원해 저를 도와주었던 시마 조교님, 그리고 집에 초대해주고, 저녁을 마련해주고, 가족모임에 초대해준 보리소프 교수님, 바라다라잔 교수님, 피뇽 교수님, 벤 아저씨와 아주머니, 조셀린, 제임스, 수잔, 올리비아와 존 부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따뜻하고, 호기심 많고, 배려심깊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고마움으로 미국생활 3년이 가득 차 있습니다.
제게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은 이 모든 잊지 못할 경험들을 가능하게 해 준 커다란 전환점이자 선물입니다. 건축, 디자인에서부터 금융과 법률까지 각 분야 최고의 열정을 지닌 이들이 모여 각자의 꿈을 이뤄나가는 뉴욕에서, 미국 뿐 아니라 수많은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접하며 세계인으로서 삶과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깨닫는 3년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진심을 다해 고민하고 감탄했던 날들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익숙한 것들에 대한 성찰,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는 이가 되고싶다는 바램과 다짐을 함께 합니다. 그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장학생들을 위해 늘 아낌없는 지원과 조언을 베풀어주신, 프로그램에 관여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향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서의 경험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께, 제가 여름날 해변에서 느꼈던 처음 그 긴장과 설렘을 고스란히 담아 응원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