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윤 (Jiyoon Kim)
2019 Fulbright Graduate Student Program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Fine Arts (MA)
한국에서 서양 미술(Fine Arts)을 전공하고 서구 미술을 중심으로 한 교육을 받으면서 미국 미술 현장 그리고 이를 둘러싼 문화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갔다. 그림 그리기, 만들기, 그리고 이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것에 이끌려 작업하기를 업으로 결심했지만, 순수 작가가 된다는 것, 순수 미술을 공부한다는 것이 대학에 와서 더 추상적으로 느껴졌고 길을 잃은 것 같았다. 학부 시절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시카고 예술 대학에 교환 학생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당장 무언가를 만들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서 다른 이들의 삶을 듣고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다른 인종, 다양한 미술의 모습을 경험하면서 더 넓은 세계 속에서 나를 새로이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고, 이를 통해 내가 미술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보다 명확해짐을 느꼈다. 아쉬운 시간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졸업 전시를 마친 후, 미국에서 제대로 공부를 하고, 전시를 하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미국 대학의 학풍과 해당 도시의 역사 등을 조사하면서 서부 LA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정체성의 정치, 대안 미술 공간의 진보적인 모습들이 시카고와는 또다른 경험을 통해 내 작업이 확장 될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미국 대학원의 생활이 동시에 나의 현실과 멀게 느껴졌다. 순수 미술을 지원해주는 재단을 찾기 어려워 하던 중 선생님을 통해 풀브라이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포트폴리오 준비와 풀브라이트 선발 과정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더 큰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다.
학교를 시작하기 전 한 달 동안 샌디에고에서 지냈던 시간은 풀브라이트가 아니었다면 경험할 수 없었던, 내게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Fulbright Pre Academic Program은 본격적인 학교 시작 전 세계 각 국의 풀브라이트 장학생 친구들이 모여 함께 미국 언어와 문화 이해, 유학 생활 준비를 위한 전반적인 도움을 받을 뿐 아니라 친구가 되어 문화를 공유하고 그 다름을 피부로 이해 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학부 신입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함께 숙소를 쓰고, 요리를 하고, 팀을 이뤄 주어진 과제를 함께 풀고, 처음으로 수 백 인분의 음식을 만드는 봉사를 함께 가고, 풀브라이트를 지원해 미국으로 오게 된 계기를 이야기했다. 사소한 개인의 이야기부터 서로의 국가가 기여하고 있는 세계 정치, 환경 문제들, 불평등, 그런 이야기들을 동거동락하며 나눴다.
이집트에서 온 내 룸메이트 유스라, 인도네시아에서 온 엄마 같던 피트리와 헨드리아나, 마지막 날 모두에게 편지를 써준 알라, 함께 짚라인을 탔던 두바이에서 온 사라, 나와 같은 학교에 오게 되어 모두 흩어지고 나서도 서로 도움을 주었던 아마누엘, 샌디에고에서 우리 기수를 맡았던 테레사 선생님까지 한 명 한 명이 마지막 날 포옹을 하며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정말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모두 코로나와 같은 힘든 세상이 오기 전에 기대와 설렘으로 함께했던 시간들을 간직하면서 서로 꾸준히 응원하고 그룹 콜과 채팅을 이어오고 있다. 짧은 한달의 시간이었지만 다른 세계의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물리적 거리,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내가 다니게 된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학교의 Master of Fine Arts 는 1, 2학년을 합쳐 12명인 소수의 프로그램이었다. 우리 학년에는 나를 포함해 7명의 친구가 있었고,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인종, 나이, 성적 지향성, 정체성, 경제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우리의 작업 주제, 시각적 언어, 토론의 논점도 매우 다양했다. 처음 그룹 크리틱 수업은 6개월의 해외 경험이 전부인 나에게 무척 떨렸다. 당연히 모든 부분을 완벽하게 알아 듣지 못했고, 내 작업을 실수 없이 전달하고 싶어 긴장도 많이 했다. 그러나 우리는 수업이 끝나고 늘 공용 공간인 부엌에 모여서 시간 안에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도 하고, 국제 학생이었던 나와 말레이시아 친구를 지역 행사, 저녁 식사 등에 늘 초대하면서 빨리 친해졌을 뿐 아니라 서로의 작업을 이해하고 피드백을 교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로 인해서 유명한 미술관, 갤러리 뿐 아니라 여성, 흑인/라틴/아시아, 퀴어를 중심으로 한 미술 공간, 단체에 대해 배우고 그 커뮤니티의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애니모 잭키 로빈슨이라는 고등학교의 방과후 미술 프로그램에 선배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면서 로컬의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설레고 새로운 일들과 함께했지만, 동시에 나는 거주 문제로 계속된 이사와 건강 문제, 혹은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이해를 받지 못해 외롭기도 하고 속상한 일도 많이 겪게 되었다. 즐거운 일들이 많았지만 새로운 환경은 늘 적응의 시간이 필수적이다. 이 때, 내가 이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던 페미니스트 운동가/교육자이자 작가이신 수잔 레이시 선생님이 내게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선생님은 내 작업의 한국적 요소, 배경들이 서구 중심의 시선에서 어떤 식으로 오해 될 수 있지만, 내 작업이 왜 중요한 지에 대해 흔들리지 않도록 많은 조언을 해주셨고, 학교 바깥의 나의 생활과 심리적인 부분까지 상담 선생님처럼 상담해주시고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주셨다. 그 외에도 패티 창, 에드거, 제니퍼 교수님들 모두가 내 기대 이상으로 학생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시며 동시에 예술 작가 동료로서 우리를 동등하게 존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작업 뿐 아니라 그들이 우리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코로나가 시작되어 3월부터 학교에 갈 수 없기 전까지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프로그래밍으로 퍼포먼스 이벤트, 팝업 그룹 전시, 오픈 스튜디오 등 작업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이러한 이벤트에 많은 사람들이 편견 없이 관람하러 오는 것 또한 전시 기회가 흔하지 않았던 나에게 작업에 대해 이야기 하고 다양한 의견들을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온라인으로 미술 작업을 해야했고, 많은 것들을 이전처럼 배울 수도, 나눌 수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학년 친구들은 꾸준히 온라인으로라도 일대일로 오프라인에서, 작업 피드백을 주고 받고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며 외롭고 고립된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했고, 이를 통해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무엇보다, 개개인의 졸업 전시를 학교 갤러리 공간에서 전시 할 수 있었고, 나는 이 졸업 전시를 통해 내년 3월 미국에서 개인전 기회를 제안 받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들 속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을 수 밖에 없었던 유학 생활이었지만, 그만큼 나를 지탱해주는 인생에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기에 또한 감사한 시간이었다.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 풀브라이트의 지원에도 다시금 감사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