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현 (Jihyun Yun)
2014 Fulbright Graduate Student Program
Fordham University, English (PhD)
“왜 하필 영문학을 공부하려고?”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자랐으며, 외국인과 말 한 번 섞어본 적 없던 제가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해보겠다고 했을 때 제 주변 사람들이 했던 질문입니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곳에 사는 영미문화권 작가들이 페이지 위에 그려내는 세상은 낯설면서도 익숙했고,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이었으며, 쓰리고 아리면서도 따뜻했습니다. 한국 밖의 세상이 늘 궁금했던 제게 한미교육위원단 풀브라이트 대학원 장학 프로그램은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외부장학 프로그램은 이공계열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했기 때문에, 인문학과 예술계열 전공자들에게 전폭적인 장학금과 아낌없이 생활비 지원을 하는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은 제게 독보적인 기회였습니다. 또한 해외에서 교육을 받은 경험이 적으며 특히 미국대학에서 1년의 기간을 초과하여 공부한 적 없는 학생들에게 유학의 기회를 먼저 제공하는 풀브라이트는, 외국에 가족도 친구도 한 명 없이 국내에서 영문학 연구의 꿈을 키워온 제게 너무나 소중한 인연으로 다가왔습니다.
꽃피는 봄부터 시작되는 풀브라이트의 서류접수는 보통 겨울에 진행되는 미국대학원 원서지원 시기보다 한참 앞섰고, 덕분에 저는 미국 대학원 진학준비를 통상적인 타임라인보다 몇 개월 앞서 차근차근하게 되었습니다. 자기소개서, 학업계획서, Writing Sample, CV, 교수 추천서, 영문재학 증명서, 영문성적 증명서, 어학 성적표 등의 어마무시한 양의 대학원 입시지원 서류는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완성하는 데 시간이 훨씬 더 걸렸습니다. 이러한 입시준비 절차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던 제가 큰 시행착오 없이 한 번의 시도만으로 5년간 학비 전액 면제와 생활비 지원이라는 꿈같은 조건으로 뉴욕의 포덤 대학교 영문학 박사학위 프로그램에 합격하게 된 데에는 풀브라이트의 지지가 컸습니다. 제가 지원했던 대학원 프로그램 다수가 풀브라이트 장학생 대상으로 지원비 전액을 면제해줬는데, 이로부터 많은 미국 대학들이 풀브라이트 장학생에게 강한 호의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최종 합격한 프로그램 또한 이러한 특혜를 제공했으며, 실로 이후 학교에서 교수님들을 처음 뵙는 자리에서 제 입학서류를 검토하셨던 교수님들이 제가 풀브라이트 장학생인 점을 인상적으로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풀브라이트 대학원 장학 프로그램은 의료보험과 미국행 항공비를 포함, 첫 2년간 학비 및 생활비를 지원합니다. 이러한 재정적 지원은 제 초기 정착에 실질적인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미국 땅을 막 밟았을 때 첫 며칠간 몇 차례의 부상과 병을 앓았는데, 하필 그때가 학교의 의료보험이 적용되기도 이전인 시점이라 큰 고생을 할 뻔했지만, 풀브라이트 의료보험 덕분에 병원을 갈 수 있었고 필요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에도 불구하고 제가 나름의 살림살이를 장만하여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학교의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에 더불어 2년간 제게 매달 용돈을 보내주었던 풀브라이트 재단의 후한 지원 덕분이었습니다. 또한 풀브라이트는 복잡하고 어렵기로 유명한 미국의 세금정산을 첫 2년간 대신해주는데, 이는 모든 것이 낯선 유학생들에게 결코 사소하지 않은 고마운 도움입니다.
저는 꿈과 같은 도시 뉴욕에 도착했지만, 뉴욕을 구경하기는커녕, 박사 첫 학기 내내 동네의 24시간 운영하는 허름한 세탁소에 가서 빨래를 하는 동안 간의의자에 엉거주춤 앉아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관련 비평서적만 몇 십 권을 읽곤 했습니다. 그곳 대형 TV에서 요란히 울려 퍼지는 광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더듬더듬 읽노라면 빨래방에 부모님을 따라 빨래하러 온 아이들이 자기가 만든 쿠키를 먹어보라고 제게 자주 말을 걸었고, 망아지처럼 폴랑폴랑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말을 섞다보면 어느새 빨래가 다 되었고, 이후 저는 바쁜 종종 걸음으로 도서관으로 도망치듯 가곤 했습니다. 학업과 생활에 치여 자칫 도서관과 동네 빨래방에서만 파묻혀 살 뻔 했던 제가 다채롭고 반짝반짝 빛나는 뉴욕을 마음껏 체험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장학생들의 문화와 예술, 여가생활을 적극 지원하는 풀브라이트의 후원 덕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풀브라이트 뉴욕 지사의 Cultural Events 프로그램은 맨해튼 내 상영하는 각종 예술 공연 티켓을 학기 내 몇 번씩 학생들에게 1인당 2매까지 무료로 배부합니다. 이에 저는 뉴욕에 도착한지 처음으로 단정한 옷을 빼입고 친구와 함께 미드타운 맨해튼을 누비며 몇 백 달러에 상응하는 비싼 입장료에 어쩌면 영영 범접하지 못했을 카네기 홀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가벼운 마음으로 가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뉴욕 풀브라이트의 One To World 프로그램은 전 세계에서 뉴욕으로 유학을 온 각국의 장학생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매달 만들어줍니다. 저는 미국에서 처음 맞는 생일의 하루 전날, 마치 생일선물처럼 풀브라이트로부터 할렘에 위치한 리오 갤러리 옥상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받았었고, 유쾌한 사람들과 진귀한 음식, 그리고 맨해튼의 스카이라인과 허드슨 강변을 보며 어느 여름의 끝자락을 풍성하게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뉴욕 풀브라이트의 One To World 프로그램은 학술 강연과 세미나 또한 자주 개최합니다. 그 중 특히 인상적인 강연은 뉴욕대학에서 열렸던 풀브라이트 출신의 재미교포 소설가 Suki Kim의 강연으로, 6개월간 북한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보고 들은 바를 바탕으로 쓴 본인의 자서전 Without You, There is No Us (2015)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당시 One To World 프로그램 담당자는 제가 영문학을 전공하는 것을 기억하고 제게 개인적으로 따로 초대를 하며 이 강연만큼은 시간을 내어 꼭 참석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때의 두어 시간의 강연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게는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후 저는 뉴욕에 있는 동안 미국문학 자서전 관련 수업을 두 개 수강하게 되었고, 몇 개월 후 박사학위 종합시험 과목으로 자서전 문학을 선택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자연스레 포덤 대학의 학부학생들에게 자서전 문학 강의를 하게 되었고, 결국 최종 박사 학위 논문의 소주제로 자서전 장르에 대해 쓰게 되었습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현재 한국으로 귀국한 시점에 저는 자서전 글쓰기에 대한 학술 논문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작게 시작한 만남과 인연으로 저는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의 수많은 혜택 중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저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특히 한국인이 거의 없는 학교의 프로그램에서 7년을 지냈기 때문에 유학 생활 내내 한국 말, 한국 음식, 한국 문화, 그리고 한국 사람이 그리웠습니다. 2014년 함께 유학길에 오른 풀브라이트 동기들은 학기 시작에 따라 미국의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소식을 자주 주고받았으며 틈틈이 바쁜 와중에 먼 길을 여행해서 서로의 얼굴을 보기도 했습니다. 미국대사관을 방문할 때, 비자를 연장할 때, 은행 계좌를 만들 때, 세금 정산을 할 때, 저렴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구할 때, 한국으로 송금할 때,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 심심할 때, 그리고 삶이 외롭고 초라하다고 느껴질 때, 그런 순간마다 카카오톡과 페이스북 등으로 가장 먼저 실질적인 조언과 따뜻한 말을 해준 사람들은 풀브라이트 동기들이었습니다. 세계의 어디에서나 무엇을 하고 살던 결국은 사람이 항상 가장 중요한 제게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은 귀중한 사람들을 안겨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