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택 (Hyuntaek Lee)
2021 Humphrey Fellowship Program for Journalists
Chosun Ilbo

2021-2022년 풀브라이트의 중견 언론인 과정인 험프리 저널리스트 프로그램을 수료한 이현택입니다. 한국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의 75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제게 풀브라이트 프로그램 참여 경험은 언론인으로서 역량을 한 층 더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험프리 프로그램은 그동안 국내 언론인 대상 연수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라는 점에서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1년간의 압축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언론에 대해 집약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최우수 대학원생, 방문 교수, 공무원 연수자 등에게나 허용되는 이름인 풀브라이트 동문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원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영어라는 장벽이 있습니다. 지원자 전원이 한 곳에 모여서 기관 토플에 응시했고, 이와 별도로 정규 토플을 또 쳐야 했습니다. 이와 별도로 캔자스에서 2개월 동안 어학교육을 진행하는데 처음과 끝 두 번 기관 토플을 칩니다. 지원서류는 또 어찌나 어렵던지요. 그간의 경력을 관통하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도 어려웠고, 에세이를 작성하기도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준비 과정에서 기존에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공부한 선배들의 수기를 읽으면서 꿈을 키우고 또 서류를 작성했습니다. 면접을 거쳐 최종합격을 했을 때는 가족들과 삼겹살 파티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험프리 펠로우들은 모두 2개월간 사전 어학 교육을 거칩니다. 참가 국가별로 어학 교육 참가 규정이 다른데, 한국 펠로우들은 한미교육위원단의 배려로 2개월간 어학 교육을 받게 됩니다. 저희는 캔자스대에서 공부했습니다. 학부생 하나 없는 한적한 캠퍼스에서 전세계 펠로우 40여명이 모여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은 이색적인 경험입니다. 크게 작문과 회화/미국문화, 리딩 등으로 수업이 진행됐습니다. 하루에 적게는 6시간, 많게는 8시간 가까이 수업이 이어졌는데, 어떤 펠로우들은 휴게 시간에 모여서 스터디그룹을 하기도 했습니다. 얼른 어학 과정을 마치고 쉬고 싶다는 생각만 해온 저로서는 장학생으로서의 자세에 대해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언론 부문 험프리 펠로우는 모두 애리조나 피닉스에 있는 애리조나주립대(Arizona State University) 월터크롱카이트저널리즘앤드매스커뮤니케이션스쿨로 배정됩니다. 미국의 명 앵커 크롱카이트의 이름을 따서 만든 학교인데, 실무와 이론을 겸비하는 ‘병원식 교육’을 모토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펠로우들이 본 교육과정을 시작하는 8월, 피닉스는 섭씨 43~47도의 이글거리는 날씨입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덥다는 느낌과 함께 척박해 보이는 도시에서의 낯선 느낌은 지금도 새록새록합니다. 하지만 12월에도 최고 기온이 27도에 육박할 정도로, 겨울철 날씨는 파라다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게 있어 풀브라이트의 험프리 프로그램은 기자로서 글로벌 시각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함께 보고,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대기자 월터 로빈슨과 토론해 볼 수 있는 기억, 미국 국무부 당국자들이 참석한 글로벌 리더십 포럼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 등은 풀브라이트만이 줄 수 있는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미국 기관에서 실무 업무를 거쳐야 프로그램 수료가 가능한 Professional Affiliation 과정도 역량 증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국제부 기자로 오랜 시간 근무했지만, 정작 우리의 관점은 미국 주류 언론을 받아쓰기 바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험프리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인연을 통해 각국의 기자들과 토론을 하고 또 함께 독서를 하면서,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풀브라이트와 험프리 프로그램의 인연은 교육이 끝난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기회가 닿아 한미교육위원단에서 주최한 동문 대상 토론회를 방청할 기회도 있었고,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진행하는 브라운백 행사에서 좋은 강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23년 미국 탐사보도협회(IRE) 이사회 선거에서 아시아 국가 출신으로는 최초로 당선되는 영광도 누릴 수 있었는데, 선거 당시 풀브라이트의 험프리 프로그램을 수료했다는 점이 좋은 이력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풀브라이트 동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미래 인재들을 위한 멘토를 자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많은 선배들에게 조언을 받을 수 있었고, 앞으로도 풀브라이트의 여러 프로그램에 지원하거나 또 수혜 중인 후배들에게 작지만 의미 있는 도움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합니다. 얼마 전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미 국제교육원(IIE)이 주관하는 IIE Center for Access and Equity Empower Award에서 제가 Honorable Mention으로 선정된 바 있는데,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새기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한국 풀브라이트의 75주년을 축하드리며, 훌륭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끌어 온 한미 양국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