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항수 (Hang Soo Jeong)
2018 Fulbright Graduate Student Program
Harvard University, Architecture (MA)
학사 학위 취득과 실무 경험 이후, 건축에 대한 제 열정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뜨겁고 깊었던 것 같습니다. 2012년 허리케인 피해 복구 및 대비를 위해 계획된 뉴욕의 맨해튼 부둣가 재정비 사업, 그리고 2015년 난민 폭증으로 인한 주택난에 맞서 각국 건축가들이 계획한 크고 작은 대피소들 등, 당시 일련의 공공 건축 프로젝트들은 21세기 최대 화두인 지속 가능한 도시 환경을 이룰 건축가들의 역량에 대해 다시 한번 제게 일깨워주었고 또 긍지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회 및 환경 이슈들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도시 기반 시설 마련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건축가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시대 과제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상생(相生)을 도모할 실효성 있는 건축 설계법 연구에 대한 갈증은 그렇게 커지기 시작했고, 저는 더 나은 도시 환경을 그리던 꿈과 열정을 풀브라이트 프로그램 지원을 통해 계속 키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케임브리지에서의 건축 공부와 유학 생활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높은 물가나 생활비와 같은 지출은 저를 포함한 다른 유학생들 모두가 겪는 크고 작은 경제적 부담이겠지만, 공부에 드는 적지 않던 교재비는 특히나 형편이 여유롭지 않던 제게 벅찬 생활고로까지 다가왔습니다. 건축 공부 특성상 매 학기 병행되던 다양한 재료 및 모형 테스트로 인해 몇 달 치 월세와 맞먹는 경비를 추가적으로 감당해야만 했고, 기존 예상을 훨씬 웃돈 학업 비용은 결국 저로 하여금 먼 타지에서 학자금 대출까지 받도록 내몰았습니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4년이라는 다소 긴 학위 과정은 이러한 경제적 고충을 한층 더 키웠던 것 같습니다. 또한, 학업을 진행하는 동안 겪은 팬데믹과 그 이후 계속된 교육·행정 시스템들의 수정 및 변경은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에게 학교 공부 이외에도 지속적으로 배우고 또 개척해 나가야 하는 다양한 일상 과제들을 내주었습니다. 불안정했던 당시 사회 제도는 심지어 유학길에 공들여 세웠던 학업 계획과 진로 목표까지 흔들었습니다. 오프라인 및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수시로 넘나들며 서로 다른 교육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하루가 다르게 갱신되던 자가격리 가이드라인과 시설 이용 규제들은 기존 수업 이수 계획과 연구 목표를 무용지물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재정적·환경적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저는 학교 안팎으로 다양한 노력들을 해야만 했습니다. 전공 수업 조교(Course TA)와 더불어 교내 구조물 제작 연구실(Fabrication Lab)에서 기술 조수(Technical Assistant)로 일을 하며 부족한 학자금을 충당했고, 보스턴 시청과 IIE 등 다양한 기관들과의 잦은 연락을 통해 매번 업데이트되던 규제 및 조정 소식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학업 계획에 영향을 주는 변수를 최대한 줄였습니다. 방학 때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다른 유학생들과는 달리, 여름과 겨울에도 학교 캠퍼스에 머물며 불필요한 지출을 막고 또 다른 재정적·학업적 기회를 엿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스스로가 처량하고 안쓰럽게만 느껴지던 그런 노력들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어쩌면 풀브라이트 장학생의 신분이었기에 가능했을 그런 크고 작은 시도들이 오늘날 제 학업 성취와 이력을 갖추는데 밑거름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매 해 전체 졸업생들 중 단 한 명에게 수여되는 피터 라이스 상(Peter Rice Prize)을 받으며, 하버드 대학교 건축학 프로그램을 우수 졸업했습니다. 국제 학생으로서는 드물게 보스턴 도시개발공사(Boston Planning & Development Agency)에서 건축 및 도시 디자인 팰로쉽을 지냈으며, 제 졸업 논문은 2023년 하버드 대학교 건드 홀에 전시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OMA와 Foster + Partners 등 전 세계 건축학도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유명 건축회사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습니다. 이러한 달콤한 결실들은 물론 쓰디쓴 유학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 수많은 노력들이 그 배경에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부족한 학자금 충당을 위해 시작했던 구조 설계 수업 조교 생활과 구조물 제작 연구실 기술 조수 경험은 구조 메커니즘과 재료 물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구를 도왔고, 이는 지속 가능한 건축·도시 설계 전략인 레트로피트(Retrofit) 디자인을 다루는 제 졸업 논문의 학문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게 수정되던 다양한 시설 이용 가이드라인에 대처하고자 연락하기 시작한 시청으로부터는 보스턴 도시개발공사에서의 팰로쉽 기회를 얻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건축 설계법 연구에 필수적인 다양한 현장 공부를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덤으로 쌓을 수 있었던 그간의 소중한 인적 자원들은 작품 전시 등 또 다른 학문적·직업적 기회들이 졸업 이후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라. 윈스턴 처칠이 한 말입니다. 낯선 타지에서의 유학 생활은 생각지 못한 곤경을 맞닥뜨리게 하기도 하고, 무능함을 직면케하고 의지를 좌절시키는가 하면, 애초 가지고 있던 학업과 진로에 대한 열정을 차갑게 식게도 합니다. 유학 성공 항로에는 순풍(順風)이 생각보다 드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알맞은 바람이 불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기보다는, 노를 열심히 젓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비록 그 속도가 더디고 작은 몸짓이 미련해 보일지라도, 하루하루 진보하는 자신의 모습은 스스로에게 자신감과 끊임없는 동기를 부여해 줄 것입니다. 그런 움직임을 통해 감동받은 주변 이들이 동료로서 함께 노를 저어주거나, 더 안전하고 빨리 목표 지점에 닿을 수 있는 돛대나 모터를 만들어줄지도 모릅니다. 제 경험을 비춰 보면,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은 바로 이 기회와 성취로 이어지는 항로에 제공된 튼튼한 노였던 것 같습니다. 금전적인 지원과 지속적인 학업 관리는 그 어떤 유학생들보다 더 능동적으로 공부와 연구에 증진할 수 있는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또 저명한 장학 프로그램 수혜자로서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던 다양한 노력과 시도들은 제게 더 많은 기회들과 인연을 제공해 주었고, 과분한 성취들까지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제 경험이 유학의 길을 계획 중인 분들에게 작은 나침반이 되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학업 도중 마주칠 여러 장애 요소들에 대해 쉽게 좌절하거나 굴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상황을 개척해나갈 수 있도록, 제 사례가 예비 유학생들 학업에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