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 (Hae Kyoung Lee)
2023 Visiting Scholar Program
Columbia University, Theater Arts
지원동기
저는 오래 전부터 미국무성에서 주관하는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의 전통과 권위를 잘 알고 있어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동참하고자 했습니다. 예술대학 교수로 학교에 재직하는 동안에는 연극과 미술 분야의 저명한 미국 교수들을 풀브라이트 연구자로 초청해서 호스트로서 양국의 학술적, 예술적 교류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때로는 한국의 풀브라이트 장학생 심사를 맡으면서 엄격한 선발 과정에 참여하는 자부심을 갖기도 했었습니다.
학교를 퇴직한 후 문화콘텐츠 제작사를 운영하며 공연을 올리던 차에 풀브라이트 시니어 전문가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 제가 구상하고 있던 작품이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성장하여 한국의 독립과 건국운동에 헌신한 후 혁신적인 기업가이자 교육자로 기여했던 유일한 박사에 대한 것이어서 연구와 교육, 그리고 문화를 통해 한미 친선을 도모하는 풀브라이트의 정신를 실현할 기회라고 생각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선발과정부터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서의 유학 생활에 대한 경험과 느낌
1) 장학금 선발 과정 – 두 번의 도전
풀브라이트 장학금의 목적과 목표를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지원을 결심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우선 문화 창작 분야가 선정되는 경우가 드문데다가 제가 수행하려는 하는 활동과 결과물이 기존의 연구와는 달라서 과연 가능성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컸습니다. 그럼에도 최대한 성의껏 준비해서 2022-2023년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결과는 낙방이었습니다. 잠시 실망은 했지만 2023-2024년 프로그램에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는 지원서에 제안한 연구와 결과물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신뢰와 기대감을 더욱 갖도록 하기 위해 그 사이에 올린 공연의 의미와 성과를 추가했고 저의 역량과 제 프로젝트의 가치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공감하는 분들의 추천서를 받았습니다. 이 당시는 팬데믹 기간이어서 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특히 미국에서 참여한 심사위원들이 제 프로젝트에 대해 높은 관심을 표현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기다리던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특히 세 가지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은퇴한 명예교수이자 새내기 제작자를 믿어준 플브라이트의 용기에 감사했습니다. 두 번째는 전통적인 문헌 연구 뿐만 아니라 유일한이 성장하고 활동한 여러 지역을 현장 답사하겠다는 제 계획을 그대로 믿어준 신뢰가 큰 격려로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연구 결과물을 일반적인 논문이 아니라 대본 창작으로 제출하겠다는 제 목표를 기대와 함께 응원해준 일입니다. 이 같은 결과는 저는 물론이고 제 동료와 지인들에게도 풀브라이트 장학금의 가능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도전해보려는 계기를 주었습니다.
2) 연구 기관 선택 과정 – 전화위복
장학생으로 선정된 후 연구 성과를 최대한 낼 수 있는 학교와 기관들을 살펴보며 호스트 기관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난관을 만났습니다. 연극학과가 있는 대학교들과 공연 제작 단체들, 그리고 연구소들을 다양하게 살펴보다가 우선 연구의 배경이 되는 한미 관계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국가 아카이브에 호스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담당자가 매우 협조적으로 응답하며 신속하게 진행하는 덕분에 시간을 충분히 갖고 방문 기관 수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한미교육위원회를 통해 뉴욕 소재 국제교육위원회(IIE)에 수락 문서를 제출했는데 뜻밖에 그 기관은 풀브라이트 장학생을 호스트할 수 없는 곳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담당자가 모르고 진행했던 듯 합니다. 이 때는 연구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 3개월도 남지 않은 때이어서 많이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오래 전 제가 호스트가 되어 한국으로 초청했던 콜럼비아대학교 연극학과 교수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 분은 이미 명예교수로 퇴직한 후였지만 후배 교수들과 연결해주어서 방문연구원의 자격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은 제 도움으로 풀브라이트 방문 연구원으로 한국에 올 수 있었던 사실과 당시 제가 제공했던 도움들을 모두 기억하고 제가 뉴욕에서 보람있게 지낼 수 있도록 많은 협조를 해주었습니다. 특히 뉴욕 연극계의 동향과 공연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한편, 저의 작업과 한국 역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며 제가 연구 과정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습니다.
3) 유학생활 전반에 관한 경험과 느낌 – 미국에 대한 새로운 이해
미국 생활은 저에게 낯선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1980년부터 1989년까지 유학하며 학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3년을 더 머물러서 총 12년 미국 생활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때와 현재는 시대적인 배경과 환경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공부하던 평화롭고 안정적인 캠퍼스에 비해 뉴욕은 세계 최대의 도시답게 다양하고 역동적이면서도 대도시의 문제인 고물가와 소외 계층의 존재가 눈길을 끄는 곳이었습니다. 뉴욕에 자리잡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집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집들을 알아보기는 했지만 당시 학기 중간이어서 수월하지가 않았습니다. 또한 방문연구원 기간인 6개월만 임대해야하는 상황도 장애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외부 아파트를 물색하는데 처음에는 온라인 정보를 보다가 시간이 촉박해져서 결국 부동산 중개사에게 의뢰를 하게 되었습니다 (중개료 월세 1달치). 그 도움으로 집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뉴욕의 경우 계약을 하려면 보증인이 있어야 하는데 보증인 연봉이 월세의 40배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고 그것이 어려울 경우 보증보험 (월세 1달치)를 들어서 해결해야 한답니다. 저는 다행히 그와 같은 조건을 갖춘 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풀브라이트 장학생이라는 신분은 미국 정부에서 선발하고 지원한다는 공적인 신뢰가 있지만 그 자체가 보증을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그 외 일반 생활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거주지가 뉴욕 맨해튼인데다가 코로나 이후 물가 상승이 많이 되어 생활비가 예상보다 부담스러웠지만 콜럼비아대학에서 제공받는 연구 지원과 뉴욕에서 누리는 문화예술 활동 기회를 생각해보면 소모적인 비용이라기 보다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뉴욕은 미국의 역사를 이민사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한 최적의 도시라서 시기별, 지역별, 민족별 형성된 공간들과 기념물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심도 있는 정보와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연구 과정에 필수적인 현장 답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구 기간 중 유일한이 대학 공부를 마친 미시간주 앤아버와, 사업을 시작한 디트로이트, 9살 어린 나이부터 고등학교까지 성장한 네브라스카주의 커니시와 헤이스팅스시를 세차례에 걸쳐서 답사하며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인 190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농업이 주 산업인 대평원지역과 자동차 산업이 일어난 대표적인 산업지역들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외 독립과 건국의 도시 필라델피아, 미국 정치와 외교의 도시 워싱턴 DC, 유일한이 미국에 도착한 샌프란시스코, 잠시 거주했던 콜로라도의 덴버시 등 여러 지역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받은 느낌은 미국에서 아직은 아시아인들, 그 중에서도 한국인들과 문화의 존재감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한류의 확장과 한국 기업들의 약진으로 한국에 대한 인식과 관심은 많아졌지만 미국 전 지역에서 생활했던 한인들이 미국 역사와 사회에 기여한 부분들은 별로 알려지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지금 진행하는 제 연구 결과물이 미국과 한국이 공유하는 역사와 정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자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의 한 사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추천하는 이유
첫째, 풀브라이트 장학금의 역사와 전통에서 나오는 신뢰와 권위입니다. 이번 미국에 있는 동안 저를 소개할 때 가장 신뢰를 받는 단어는 “Fulbright Scholar” 라는 것이었습니다. 1945년부터 세계 각지의 전문가들과 문화사절들을 양성해온 장학금에 대해서 미국의 각종 기관이나 인사들이 모두 존경심을 갖고 있고, 그에 따라 풀브라이트 장학생에 대해 호의적으로 환영하며 협력하려는 노력들을 경험했습니다.
둘째, 미국무성이 주관하는 장학금으로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연구, 교육, 문화를 통한 한국과 미국의 우호 증진이므로 연구를 진행할 때에도 보다 국가적 차원의 관점을 갖게 되어서 미국의 역사와 사회를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한편, 한국에 대해 소개할 때에도 자연스럽게 역사와 사회에 대해 공적인 입장에서 소개하게 됩니다.
셋째, 전 세계 각 지역의 전공자들이 모이는 만큼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만남을 갖게 됩니다. 특히 풀브라이트 장학생들을 모아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One To World 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국제적 네트워킹을 시도해볼 것을 권합니다.
넷째, 그와 함께 미국에서 세계 각국으로 파견되었던 풀브라이트 장학금 동문들이 사회 여러 분야에 퍼져 있어서 뜻하지 않게 반가운 만남을 갖게 되거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특히 학교나 연구기관에서 풀브라이트 동문들을 만나기 쉬운데 그들과 플브라이터로서 뿐만 아니라 해외 유학을 해본 경험자로서 훨씬 더 친근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비 지원자에게 줄 수 있는 메세지
이상 저의 풀브라이트 장학생 분투기를 소개했습니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완주한 저의 경우를 참고로 해서 꿈을 이룰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용기있게 진전하기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한미교육위원단과 미국 IIE의 담당자들의 지원이 가장 실제적인 도움이 됩니다. 저는 특히 한국에서 준비 단계부터 보고서 작성까지 한국 위원단의 귀중한 조언을 많이 받았습니다. 각 단계마다 그 분들과 상의하면서 장학 생활 사전 준비를 잘 하고 연구 기간을 알차게 보내서 인생의 소중한 기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를 응원합니다.